하늘색 줄무늬 수의차림의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타난 김하주(80) 영훈학원 이사장은 입시비리 사건 피고인으로 함께 출석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의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침통한 얼굴로 눈을 내리 깔았다. 학교 관계자들은 "성적 조작은 모두 지시를 받아 한 일"이라고 말했고 학부모들은 저마다 "입학 확정 후 학교발전기금을 강요받아 돈을 건넸을 뿐, 대가성은 없었다"며 혐의를 소명하기 바빴다.
특정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 조작을 지시하고 그 대가로 학부모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구속 기소된 김 이사장과 영훈국제중 행정실장 임모(53)씨에 대한 첫 공판이 20일 오전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렸다.
서울북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 김재환)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김 이사장은 변호인을 통해 "이사장으로 있을 때 벌어진 일이고, 학교 안의 교사들과 학부형들이 피고인이 된 사건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의 변호인 측은 "다만 피고인이 고령이고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진행된 부분은 명확히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황색 수의 차림의 임 실장은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공판 내내 고개를 숙였다.
이날 공판에는 김 이사장과 임 실장 외에도 성적조작을 공모하고 교비를 법인자금으로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전 영훈국제중 교감 정모(57)씨 등 학교 관계자 9명과 2009∼2010년 자녀의 입학 편의를 대가로 김 이사장에게 9,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정식재판에 넘겨진 학부모 4명 등 피고인 총 15명이 법정에 섰다.
피고인들은 잘못을 반성한다면서도 일부 혐의에 대해선 "억울하다"며 적극적으로 소명했다. 성적조작을 공모해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교무부장 김모(39)씨 등 3명의 변호인은 교감 김모(54)씨가 직접 성적조작을 했으며 공모하거나 행위에 가담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전 교감은 검찰 수사 도중 지난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배모(48)씨 등 학부모들도 "입학을 청탁하면서 돈을 건네지 않았다"며 "자녀들의 입학이 결정된 후 학교 측에서 학교발전기금을 내라고 강요해 돈을 준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날 법정은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50여명의 방청객들로 가득 찼으며 다음 공판은 다음 달 3일 오전 10시 서울북부지법 702호 법정에서 열린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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