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서양 영화를 보면 멋진 남자가 여성에게 차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여성들은 남자가 차 문을 열어주면 대접받는 기분이라며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의례는 영국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심지어 그런 남자를 위선자라고 깔보는 여성도 있고, 특히 남녀평등 의식이 강한 여성일수록 이런 겉치레 매너를 싫어한다. 여성이 ‘That is ok’라고 말하는데도 ‘I insist’ ‘Allow me’라고 말하는 남자를 고집스럽다고 해석하는 여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남녀 평등의 date’가 아니라 대접 받는 ‘이상한 관계’(She's being chauffeured)로 보이기 십상이다. 영화배우 겸 작가였던 Mae West도 “만나는 남자마다 나를 보호해 주려고 애쓴다. 그런데 난 그 의도를 모르겠다”(Every man I meet wants to protect me. I can't figure out what from)며 달가워하지 않았다. 영국 소설가 Charles Dickens도 “기사도 시대는 갔다. 그런 건 따분하고 이제는 강한 남자 시대다”(The age of chivalry is past. Bores have succeeded to dragons.)라고 말했다. 여기서 chivalry는 프랑스어 cheval(=horse)에서 유래한 것이고 그야말로 말 타고 다니던 시대의 매너를 말하는데 현대에 적용하는 것은 우습다는 지적이다.
중세만 해도 ‘기사도 정신이야말로 사랑과 전쟁에서 지켜야 할 매너였고 고상한 신사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덕목이었다’(More than a code of manners in war and love, Chivalry was a moral system, governing the whole of noble life.) 하지만 지금 시대에는 ‘Chivalry is the most delicate form of contempt’(기사도 정신은 경멸의 매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것을 ‘old fashioned chivalry’(옛날 방식의 기사도 정신)라고 부르는데 50대 이상 여성일수록 기사도 매너를 못마땅해하는 반면 20, 30대 여성들은 싫지 않다는 분위기다. 도로에서 여성과 함께 걸을 때에는 남자가 차도 쪽으로 걷고 여성을 인도 쪽으로 걷도록 하는 기사도 매너는 해석하기에 따라 위선일 수도 있고 배려의 표현일 수도 있다. 고전의 매너에 대한 해석은 이제 시대 따라 다르고 문화 따라 다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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