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을 강제로 징용했던 일본 신일철주금(옛 일본제철)이 지금까지의 일본측 입장과 달리 피해자의 배상요구에 전향적으로 임하겠다는 뜻을 정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신일철주금은 한국 고등법원의 배상판결이 확정되면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달 10일 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각 1억원씩 지급하라"는 첫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내렸다. 신일철주금은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판결이 확정되면 일본 정부와 협의해 판결을 수용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에서 제기된 유사한 소송을 일본 법원이 모두 기각했고,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이 강력히 반대하는 와중에 일본의 대표적 기업이 이런 판단을 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내부적으로 확정판결 후에도 배상을 거부할 경우 한국 내 자산 등이 압류될 수 있고, 거래처에 미치게 될 영향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신일철주금은 이런 판단이 자신 뿐 아니라 강제징용 배상 논란 전반에 적잖은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일철주금의 이러한 판단이 과거를 반성하는 역사인식의 토대에서 나온 것으로 보기 힘든 만큼 섣부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더욱이 강제징용 배상과 관련,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끝난 사안을 한국 법원이 뒤집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우익세력은 유사소송이 잇따를 것이며 중국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우리가 신일철주금의 인식에 주목하는 것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개인청구권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도 2007년 4월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청구와 관련, 중일공동성명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 행사는 불가능하지만 각각의 구체적인 청구에 대한 피고측의 자발적 대응은 무방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꽉 막혀있는 한일관계의 실마리를 민간차원에서 풀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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