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개월 동안 종적을 확인할 수 없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서기가 22일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중급인민법원 제5법정에 선다. 제5세대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으로 꼽히다가 왕리쥔(王立軍) 사건의 여파로 낙마한 그의 말 한마디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함께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4인방(四人幇)에 대한 재판 이후 중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로 기록될 이번 사건의 향배는 시진핑(習近平) 시대의 권력 지형과 방향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관심사는 보 전 서기가 법정에서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지다. 보 전 서기는 공산당과 사회주의 홍색 문화를 예찬하고 조직 폭력 등은 엄하게 대응하는 '창홍타흑(昌紅打黑)' 정책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가 좌파의 기수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보 전 서기는 직권 남용과 뇌물, 부패 혐의 등의 죄목으로 법정에 선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재판은 결국 좌파에 대한 단죄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따라 그가 법정에서 보일 태도는 앞으로 좌파의 위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특히 보 전 서기가 4인방 재판 당시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江靑)처럼 끝까지 재판의 부당성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경우 현 지도부로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재판이 열린다는 것은 보 전 서기 측과 현 지도부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졌다는 뜻이어서 순순히 혐의를 인정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검찰이 보 전 서기의 잘못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과연 어느 정도 내용을 공개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보 전 서기는 지난해 3월 왕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미국 영사관으로 망명을 시도한 사건이 불거지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중국공산당 중앙기율조사위원회를 거쳐 지난해 9월부터 검찰의 본격 조사를 받았다. 중앙기율위는 당시 보 전 서기가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의 영국인 살인 사건을 은폐한 중대한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리를 이용해 막대한 뇌물과 재산을 챙기고 다수의 여성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왔다고 밝혔다. 구체적 정황과 액수는 검찰이 특정한다.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재판 결과다. 보 전 서기는 권력의 정점인 25명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까지 오른 인물이다. 이 정도 최고위급의 처벌은 중국에서 이례적이다. 더구나 그는 혁명 8대 원로 중 한 명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 보 전 부총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이 그를 비호한다는 얘기도 있다. 보 전 서기는 고위층 자녀를 일컫는 태자당(太子黨)에 속해 시 주석과도 막역하다. 하지만 정권 초기 부패 척결을 주창하며 호랑이와 모기까지 잡겠다고 나선 시 주석이 그를 눈 감아줄 수도 없다. 홍콩 매체들은 절충책으로 보 전 서기가 징역형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밖에 부인 구카이라이가 과연 증인으로 설지, 가족과 변호인이 어떤 반박을 할지 등도 지켜볼 일이다. 지난시에는 벌써부터 보 전 서기 지지자와 기자들이 몰려 들고 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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