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사막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의 몽골인 가이드 S는 통상 여행가이드들이 하는 일에 더불어 끼니도 챙겨주었는데, 그날 점심은 '밥'이었다. 운전사가 황량한 벌판에 차를 세우자 S는 버너에 쌀을 얹혔다. 오랜만의 밥 냄새가 반가웠다. 반가운 건 갓 지은 밥만이 아니었다. 냄비에는 노릇노릇 누룽지가 눌어붙어 있었다. 나는 물을 조금 부어 은근한 불에 올렸다. 의아해 하는 S에게 마실 물이라고 알려주자, 기겁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설거지물을 마시겠다는 거야? 이거 마셔 이거." S가 내미는 생수병을 뿌리치고 나는 누룽지를 퍼먹고 숭늉을 마셨다. 더러워 죽겠다는 표정을 나누고 있는 S와 운전사에게 차마 권할 수는 없었지만, 딱히 '쪽팔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유럽 여행객과 동행했어도 나는 천연덕스럽게 '설거지물'을 마실 수 있었을까. '설거지물'이 아니라 숭늉이라는 '한국식 물'이라고 설명할 수 있었을까. 내가 속한 문화의 어떤 독특함을 꺼림칙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앞에서 당당한 건 좋은데, 일관되게 당당할 수 있을지 확실한 자신이 없다. 몽골사람이나 중국사람 앞에서는 당당하고 미국사람이나 독일사람 앞에서는 꽁지를 뺀다면, 문화의 상대성은커녕 마음에 새긴 문화의 위계를 실천하는 것과 다름없을 테니 말이다. 설거지물을 아무 때나 아무 앞에서나 잘 마실 수 있는지, 나를 좀 더 지켜봐야겠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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