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틱(수동변속) 차'가 살아나고 있다. 오토(자동변속)차에 밀려 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부활 조짐이 엿보인다. 일시적 '복고'바람 때문만은 아니며, 하나의 시장으로서 존속가능성이 확인됐다는 분석이다.
스틱차의 부활을 선도하는 곳은 쌍용자동차. 쌍용차 관계자는 18일 "코란도 C와 코란도 스포츠에 이어 렉스턴 W에도 스틱 전용모델을 생산함으로써 SUV 전 제품에 수동 모델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교통체증은 갈수록 심해지고, 운전시험면허 응시생 절대 다수가 오토 차량에 몰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스틱 차 출시는 사실 시장 흐름에 역행하는 일. 국내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오토 차량 보급이 증가하기 시작해 2000년대 중반에는 그 비중이 80%를 넘어섰고, 지난해엔 비중이 99%에 이르렀다. 사실상 새로 출고되는 승용차는 모두 자동변속기를 달고 나오는 셈이다.
완성차 메이커들도 오토 차량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ㆍ기아차는 i40급 이상 제품에서는 오토 모델만 생산하고 있고, 르노삼성은 내수용 차량은 아예 100% 오토 모델만 만들고 있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독일과 일본 등 해외 현지에선 스틱 비중이 여전히 상당하지만 국내엔 오토 모델만 수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용차가 스틱으로 '역주행'하게 된 건 나름 틈새시장을 찾았기 때문. 다시 '수동의 시대'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만, '오토천하'에서도 스틱이 공존할 수 있는 확신이 섰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국내 운전자들 가운데에는 오프로드 주행을 즐기는 아웃도어 애호가나 수동변속기로 주행속도를 높이는 이른바 '손맛'에 대한 갈증을 갖고 있는 층이 적지 않았다. 사전 시장조사 결과 스틱 차량에 대해 구입 의사가 많은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비효과도 크다. 스틱차량은 오토차량보다 연비가 10% 이상 높아, 고유가 시대에 경제성이 꽤 높다는 지적이다.
스틱이 옵션이 아닌 아예 전용모델로 전 SUV 라인업에 걸쳐 출시한 결과, 판매량은 확실히 크게 늘었다. 지난해 4월 스틱 전용모델 출시 전까지만 해도 3.6%에 그치던 코란도 C의 스틱 선택비율이 올해 1~7월엔 판매량의 17.6%에 달했고, 작년 8월 수동변속기 전용모델 출시 전 1.8%이던 코란도스포츠도 수동 모델 선택 비율이 올해(1~7월)엔 4배 이상 성장한 8.3%를 기록했다. 오프로드 동호회 회원 전정훈(39)씨는 "스틱 운전이 좋아서 선택했지만 싸구려차라는 이미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수동전용 모델이 나오면서 이런 이미지도 옅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시된 렉스턴 W 마니아도 다기능 차체 자세 제어 시스템(ESP), 타이어 공기압 자동감지 시스템(TPMS) 등의 첨단 안전사양에 18인치 스퍼터링휠, 브릿지스톤 타이어, 전자동 에어컨, 2열 히팅시트 등 다양한 편의사양이 대폭 적용돼, 변속기만 수동일 뿐 나머지 사양은 최첨단으로 갖춰져 있다. '스틱=저가ㆍ구형'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몇 년째 신차 없이 시장에서 고전하던 쌍용차로선 스틱 차량 출시는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지만 새로운 스틱 시장을 창출하게 된 것도 사실"이라며 "쌍용차가 성공하면 다른 업체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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