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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 먼 상생

입력
2013.08.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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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군포시에서 13년째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조모(51) 사장은 또 한번 좌절을 맛봤다. 지난달 거래처와 납품단가 계약을 체결했지만 8년째 가격이 동결된 것이다. 그 동안 원자재 가격은 얼마나 올랐고 인건비는 또 얼마나 올랐던가. 사정을 설명했지만 원청업체는 "어쩔 수 없다. 싫으면 말라"며 막무가내였다. 동결된 단가나마 제 때 받으면 다행이건만 빨라야 6개월, 1년6개월이 지나 받은 적도 있었다. 13년 전 23명이던 직원 수는 현재 4명만 남아있다.

조 사장은 3차 협력업체 사장이다. 3차 협력업체→2차 협력업체→1차 협력업체→완제품 업체로 이어지는 국내 산업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 위치한, 위로는 오로지 갑(甲)뿐인 '슈퍼 을(乙)'이다. 조 사장 회사 역시 납품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면, 맨 상위엔 대형 완성차 업체가 있다.

지난 몇 년간 대ㆍ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이 화두가 되고, 정부와 대기업들이 앞다퉈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3차 협력업체에겐 적용되지 않는 얘기다. 조 사장도 "동반성장 같은 게 있기는 한가요. 하기야 2차 협력업체들만 해도 사정이 다르다 던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최상위 원청기업이 굴지의 대기업이든 아니든, 3차 협력업체는 그냥 3차 협력업체일 뿐이다.

맞는 얘기다. 정부가 강력한 동반성장 드라이브를 걸고, 그에 맞춰 대기업들은 ▦단가 후려치기 중단 ▦현금결제 ▦자금ㆍ기술ㆍ교육지원 등 풍부한 상생협력방안을 쏟아냈지만 혜택은 1차 협력업체로 집중되고 있다. 간혹 2차 협력업체까지 혜택이 돌아가는 '낙수효과'가 생기기도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3차 혹은 그 아래 4차, 5차 협력업체들은 동반성장의 온기는커녕 여전히 냉기에 휩싸여 있다. 조 사장도 "당장 납품단가를 12~13%는 올려줘야 하는데 상위업체(2차 협력업체)들은 스스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선까지만 단가협상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올 상반기 3차 협력사의 평균 납품단가는 2011년 대비 0.9% 하락했다. 이에 비해 1ㆍ2차 협력사의 납품단가는 각각 0.8%, 0.5% 인상됐다. 1ㆍ2차 협력사들의 납품단가가 소폭이나마 상승하는 동안 '슈퍼 을'인 3차 협력사들의 수익구조는 더 나빠진 것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사실 2011년 이후 제조원가가 무려 8.3% 상승한 점을 감안하면 1ㆍ2차 협력업체 역시 제값을 받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원청 대기업들이 제값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1차 협력업체는 2차 협력업체에게, 2차 협력업체들은 3차 협력업체에게 손실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반성장에 대한 정부의 관심조차 대기업과 1차 협력업체, 기껏해야 2차 협력업체 정도에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규모도 작고 교섭력도 없는 3차 이하 협력 업체들은 정부로부터도 외면당한 채 힘겨운 불황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동주 중소기업연구원 동반성장센터장은 "시혜와 수혜적 관점으로 동반성장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영세한 협력업체들이 겪는 실질적 고통을 파악하고 스스로 교섭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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