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5시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사찰 흥국사(興國寺). 법당의 불빛이 동 트기 전 새벽 어둠을 밝히자 노란색 수련복 차림의 젊은 남녀들이 기지개를 켜며 모여들었다. 주지 대오스님은 자신 앞에 줄 맞춰 앉은 18명 젊은이들을 따뜻한 눈길로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관상이 좋으시니 귀한 인연 만나실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한테 적극적으로 의사표현도 하시고요."
젊은이들이 쑥스러운 듯 엷은 웃음을 내보였다.
이 자리는 흥국사가 주최하는 '산사(山寺)의 싱글파티(만남 템플스테이)'. 매달 셋째 주 토요일마다 혼기가 꽉 찬 청춘 남녀 10쌍을 선정해 1박 2일 동안 진행하는 이 템플스테이는 한 마디로 '사찰 속 애정촌'이다. 금욕 수행에 정진해야 할 사찰에서 남녀간 만남 주선이라니. 20~30대 젊은 사람들이 절을 좀 더 찾아줬으면 하는 바람에 주지스님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 조계종사회복지재단과 함께 추진한 행사로 벌써 21개월째다.
사찰에서 이뤄지는 남녀의 만남은 과시적인 허례나, 밀고 당기는 신경전이 없다. 은근하고 진지하다. 처음 만난 남녀는 마주 앉아 연꽃등(燈)을 만들며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다. 해가 지고 저녁바람이 불 무렵엔 무리지어 탑을 돌며 눈빛을 주고 받는다. 소개팅 식사의 대명사인 스파게티나 스테이크는 찾아볼 수 없고, 소박한 절밥으로 소리 죽여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한다.
불교 전통문화 체험에 주지스님의 경륜이 묻어나는 '사랑학 개론'까지 프로그램이 알차다는 입 소문이 나 20명 모집에 지원자는 평균 100명을 훌쩍 넘는다. 반응이 뜨겁자 사찰과 복지재단은 지난 4월부터 결혼정보업체 듀오의 연애매니저까지 섭외했다.
얼마 전 사찰 근처 노고산에 올랐다 우연히 플래카드를 보고 싱글파티를 신청했다는 회사원 윤성수(33ㆍ가명)씨는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풀 겸 도심 밖 템플스테이를 알아보던 중 짝도 찾을 수 있다는 말에 지원했다"며 "아직 쑥스럽기도 하고 일정도 빡빡한 탓에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여성분들이 많아 자유시간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오전 7시 주지스님과 함께 108배를 마친 후 땀을 식히던 회사원 이용호(29ㆍ가명)씨 역시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나 108배 같은 경건한 의식 때문에 사람에 대한 마음가짐도 더 진지해지는 것 같다"면서 "상대에게 더 진중하되 적극적으로 다가가라는 스님의 조언을 잘 되새겨야겠다"고 웃었다.
사찰에서도 사랑이 꽃피어야 한다는 주지스님의 바람은 실제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싱글파티에 참여했던 두 남녀가 올 12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며 두 달 전 절을 찾아왔던 것. 사찰 관계자는 "당시엔 사는 도시도 다르고 불교신자도 아니었던 두 분이 이게 다 부처님 뜻 아니겠냐며 과일바구니를 든 채 손을 꼭 잡고 스님께 인사를 하러 왔더라"며 "주지스님은 물론 절 전체가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동이 틀 무렵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시간인 참선(參禪)을 마지막으로 낭만촌의 짧은 여정은 끝이 났다. 사찰에서 미처 만들지 못한 인연은 정기모임을 가지며 이어갈 터다. 모든 일정이 끝나 속세로 돌아가기 전 주지스님의 마지막 당부가 이어졌다.
"만남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가 더 중요한 법. 수행자적인 마음가짐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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