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조정래(71)가 변했다. 아직도 마감한 원고지에 일일이 도장을 찍어가며 육필 원고를 쓰는 그는 출판사 직원에게 워드 작업을 시켜가며 올해 초 신작 (해냄 발행)를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연재했다. 전작 을 인터넷서점 예스 24에 연재했지만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뜻밖의 선택이었다. 등 굵직한 대하소설에서 진한 전라도 사투리와 고유어를 구사했던 그는 노작가의 이미지를 상쇄하려는 듯, 신작에서 외래어와 인터넷 용어가 섞인 짧은 문장을 선보였다. 지난 달 이 신작을 묶은 3권짜리 단행본을 출간한 후에는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해 책 안 읽는 DJ들에게 호통을 쳤다. 신작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퍼졌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를 제치고 주요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 소식 보도된 게 마침 8월 15일이었어요. 유쾌 상쾌 통쾌했지."
17일 만난 작가는 "오늘이 제 생일이다. 광복절에 일본 소설 제치고, 오늘 그 기념 인터뷰 하는 셈인데, 생애 제일 큰 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베스트셀러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선택은 독자의 몫"이라 에둘러 말했지만, 그의 어록을 정리해보면 달인의 비결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된다.
'시대에 맞는 주제를 택한다. 최선을 다해 쓴다. 적극적으로 알린다.'
는 중국 경제를 전면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연재 전부터 이슈가 됐다. 여기에 포털사이트 연재로 조정래 독자층의 외연을 획기적으로 넓혔다. 출판사 측은 조정래의 독자층이 구매력 있는 386세대인데 이들이 자녀 세대에게까지 책을 읽게 하는 교육열을 보인다며 '독자 쌍끌이'를 이 소설의 인기 비결로 꼽았다.
세간의 이런 분석에 대해 그는 " 썼을 때 작가로서 이걸 쓰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하는 사명감이 있었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라고, 특유의 비장한 태도로 답했다. 취재차 20여 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때부터 구상했고, 중국이 단순히 이웃 국가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역사적 삶을 올바로 이어나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20,30대가 이 소설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어요. 전 소설 속 주인공이 전대광보다는 송재형이라고 생각해요. 송재형과 리옌링 장면으로 소설을 끝맺은 것도 한중 간 미래지향적 모습을 그리고 싶어서였죠."
소설은 중국 주재 상사원 전대광이 상하이국제공항에서 한국 의사 서하원을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유능한 의사였지만 의료 사고를 일으킨 서하원은 전대광의 뒤를 봐주는 중국 세관 고위 관료의 의뢰로 상하이 한 병원의 성형외과로 취직하고 재기를 꿈꾼다. 중국 주재 포스코 직원인 김현곤은 전대광과 함께 수주한 프로젝트가 중국 내 알력 싸움으로 무산되자 서부 시안으로 좌천되지만, 시안에서 큰 프로젝트를 따냄으로써 도약한다. 이들에게 프로젝트를 맡긴 중국계 미국인 왕링링은 미모와 거침없는 사업 수완으로 상하이 재계에서 화제가 된다.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은 베이징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리옌링을 만나면서 역사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각 인물들은 사업, 인척, 연애 등으로 얽히고설키며 개혁 개방 이후 '정글'로 변한 중국에서 돈과 권력을 향한 욕망을 보여준다.
작가는 언젠가 '최선을 다 한다는 게 뭐냐'는 의사 박경철의 질문에 '자신의 노력이 나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쓰는 말'이라고 대답했는데, 이 기준에 비추어 자신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썼다고 말했다. 더 이상 취재할 부분이 없다고 할 정도로 완벽한 준비를 끝낸 후 집필을 시작해, 더 이상 고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할 때 출판사로 원고를 보낸다. 이것이 이후 조정래가 쓴 모든 소설의 탈고 기준이다. 이번 소설에는 컴퓨터 용어와 이모티콘이 자주 나온다. 이전 소설에서 볼 수 없는 표현들이다. 조정래 특유의 복잡다단한 인물 관계와 묵직한 주제에도 한층 발랄해진 구어체 문장 덕분에 가독성이 높다. 이 부분에 대해 "소설이 잘못하면 '드라이'해질 수 있어서 빠른 전개와 '유니크한' 문장에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작가가 최선을 다 해야 하는 분야가 점점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였다. 그는 각 출판사 부스에서 200~300명 독자를 상대로 자신의 소설을 열심히 설명하는 외국 작가들을 보며 "우리나라는 너무 뒤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는, 좀 달라졌다. 지난 달 30일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한 데 이어 섭외가 들어온 몇 개의 쇼 오락 프로그램에도 나가 볼 생각이다. 평생 단 두 번 해본 사인회도 이번 신작 출간을 기념해 다시 하기로 했다.
"문학이 한때 정서 문화의 왕이었어요.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등장으로 문학 독자가 끝 없이 떨어져 나간 게 지금까지 도정인데, 이제는 스마트폰까지 나왔어요. 근데 제 소설을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 읽었다는 거에요. 소설은 끝없이 적을 만들면서 또 공존 방법이 존재한다는 거죠. 더 잘 쓰고 알릴 수 밖에 없어요."
점점 더 많아진 할 일을 전방위적으로 마크하면서 그는 외친다.
나는, 작가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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