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대전지방법원은 업무상 촉탁 낙태죄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4명에 대해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법원의 판단을 유지했다. 이들 의사 4명은 2008년 1월부터 2011년 2월 사이 약물복용에 따른 악영향, 노산으로 인한 위험 등을 이유로 낙태를 시켜달라는 임산부들의 부탁을 받고 4~12주 된 태아들을 적게는 60여명부터 많게는 140명씩 낙태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런데 1심 법원은 이 의사들의 행위가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에 해당하는 범죄라고 판단했으면서도 낙태에 대한 처벌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점, 사실상 낙태에 대한 국가 형벌권 행사를 자제해 온 상황인 점 등을 이유로 선고유예 또는 형의 면제를 선고했었다.
선고유예를 받은 의사는 그 선고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면소된 것으로 간주되고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무죄나 다름없기 때문에 의사들은 모두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면서도 처벌은 받지 않은 결과가 된 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의 담당 판사는 인간의 행복추구권으로부터 나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사이에서 깊은 고뇌를 했을 것이고, 고뇌 끝에 형법상 낙태죄 규정의 적용을 사실상 거부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법적으로는 유죄이되 실질적으로는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법관은 입법자가 아니다. 법관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만든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하는 권능이 있을 뿐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적용을 거부하는 것은 사법권의 한계를 넘는 일이고 3권 분립의 헌법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1심과 2심의 판사들이 의견을 일치하여, 한두 명의 태아도 아니고 수백 명의 태아를 낙태시킨 의사들에 대해 낙태죄 규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은 것을 두고 판사들이 월권행위를 했다고 덮어놓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현행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형식적인 재판을 하는 쉬운 길을 버리고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를 거듭하며 나름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애쓰는 길을 택한 것은 우리 사회에 판사가 존재할 이유를 보여준 것이라고 본다.
이제 판사들이 낙태죄 규정과 피고인인 의사들 사이에서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그칠 수 있도록 국민과 국회가 역할을 할 때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1973년 '로우 대 웨이드 사건(Roe v.s. Wade)' 판결에서 임신 3개월까지는 여성의 신체자율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위에 있음을 인정하여 낙태를 금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독일의 연방헌법재판소는 1993년에 임신 3개월까지 낙태를 자유로이 허용하는 법률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하므로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미국과 독일의 예에서 보듯이 낙태에 관해서는 정답을 말하기 어렵다. 다만 그 사회의 가치관 역사 철학 등 총체적인 논의를 거쳐 최선의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형법에서 낙태를 명백한 범죄로 규정하여 형벌을 가하도록 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은 낙태가 허용되는 범위를 규정하고 있지만 우생학적 이유, 강간으로 인한 임신, 산모의 건강에 중대한 위협이 있는 경우 등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모자보건법의 낙태허용 예외규정이다. 낙태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예외의 범위를 현실적으로 조정하여야 한다.
1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동시에 출산율은 꼴찌인 나라, 자살사유 중 경제적 곤란이 압도적으로 높은 나라. 성인도 자살로써 자신의 생명권을 포기하는 예가 부지기수이고 아예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 나라라는 현실이 낙태에 관한 정책을 세울 때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살률과 출산율, 자살사유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선진국 사례를 기준으로 낙태정책을 세운다면 출산건수의 3배에 이른다는 연간 150만 건의 낙태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법관들의 고뇌는 계속될 것이며 기형적인 판결들도 줄을 잇게 될 것이다. 법관들부터 무시당하는 나쁜 법은 속히 고쳐져야 한다.
장진영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