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베란다 귀퉁이에서 나방을 발견했다. 흰 날개를 세모꼴로 펴고 회벽에 붙어 있었다. 잡을까 쫓아낼까 망설이다 창문만 열어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알아서 날아가려니 했다. 다음날 베란다에 나가 보았다. 어라. 그 자리 그대로였다. 간밤에 죽은 모양이구나. 대뜸 치울 생각이 들지 않아, 바닥에 떨어질 때를 기다려 빗자루로 쓸어 담기로 했다.
하지만 죽은 나방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벽에 꼼짝없이 붙어 있었다. 양지바른 무덤이라도 찾은 것처럼. 처음 얼마간은 매일 나방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유별난 관심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나방은 으레 거기 있었고 나는 곧 심드렁해졌다. 미물의 날개와 더듬이는 점차 말라갔다. 가끔은 벽에 딸린 입체무늬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독한 겨울이 가고 짧은 봄이 가고 긴 장마가 왔다. 죽은 나방은 우리 집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소한 애틋함이 스친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가 쉬이 마르지 않아 베란다에서 한숨 쉬다가 벽이 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방은 타일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골똘히 바라보았다. 바스라지기 직전의 낙엽처럼 가볍고 아슬아슬했다. 빗자루로 쓸어 담아 치울 차례였지만, 근 일 년을 함께 지낸 처지 아닌가. 액세서리를 넣어두던 작은 상자 하나를 비워 나방의 시체를 담았다. 그제야 한 쌍의 새까만 눈이 보였다. 영혼의 흔적일지도 몰랐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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