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마라톤'이라는 대회가 있다. "미친 놈"이라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100km, 200km, 심지어 600km 넘게 밤낮없이 일주일씩 죽어라 달려야 하는 대회다. 그런 대회가 소문도 없이 지난 7월 열렸다. 전남 해남에서 강원 고성까지 6박7일간 622km를 달리는, 울트라마라톤 중에서도 가장 독하다는 대회다.
정기휴가에 연월차까지 모으고, 제 돈까지 써가며 이 대회에 참가한 이는 모두 81명. 우리는 그들을 만났다. 가로등 없는 심야의 국도를 따라 달리며 '왜 뛰냐'고 물었고, 가쁜 숨 몰아 쉬며 종아리를 주무르는 그들 곁에 퍼더앉아 물집으로 두꺼비 등짝처럼 변해버린 발바닥을 훔쳐보기도 했다.
-뭐가 좋아서 이 고생을 하세요?
"한 발 디뎠으니 가는 데까지 가 보려고요. 별다른 의미 없어요. 그냥 뛰는 겁니다."정해상(51)씨. 모진 질문에 정씨의 대답은 저리 순했다. 그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난 참가자들 다수의 대답이 대개 저런 식이었다. "중독이지 뭐." "나도 몰라." "이게 마지막이야." "글쎄 허허허"….
출전을 준비하는 시간도 가혹했을 것이다. 김미순(53)씨는 "이번 대회 준비하면서 연풀이도 하고 삼풀이도 했다"고 말했다. 연풀이란 마라토너들의 은어로, 마라톤 풀코스를 이틀 연속 달리는 거고 삼풀이는 사흘 연속 달리는 거다. 대회를 찾아 다니며 주말 이틀 연속 출전을 하고, 대회가 없으면 동호회원들끼리 자체적으로 코스를 마련해 달렸다고 했다. 실전에서 하루 평균 100km를 그것도 엿새씩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연풀이는 기본. 그들은 200km 울트라마라톤도 워밍업 정도로 여기는 눈치였다.
울트라마라톤에 대해 자문해준 한 저명한 의사는 마라톤 풀코스를 넘겨 뛴다고 신체가 더 강해지는 건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는 "그 사람들, 시작 전에 잘 안내했으면 (신체 능력 키우는 데) 훨씬 좋은 다른 종목으로 인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고백하건대 우리는 그들이 달리는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대답을 만들어준 그들 자신조차 자신들의 대답을 안 믿는 눈치였고, 이유 따위 아예 관심이 없는 듯도 했다.
사실 울트라마라톤은 돈 되는 스포츠도 아니고, 유명해질 수 있는 종목도 아니다. 경쟁할 상대도, 깨야 할 기록도 그들에겐 없다. 다만 길이 남아 있고 몸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달리겠다는 작정으로 나선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절박한 그 무엇도 없이, 분초를 아껴가며 제 능력의 극한까지 두려움 없이 육박해갔고, 우리는 그 과정의 드라마에 만족하기로 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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