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에서 '국제룰'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이명박정부 때부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부터 "북한과 우리의 관계도 실리적이고 국제룰에 맞게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이명박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정부조직 개편안을 구상하면서 '통일부 폐지'를 비중 있게 논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남북은 국제룰에 따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가간의 정상관계로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민족간의 특수관계를 전제로 한 통일부라는 조직은 불필요하다는 논리였다. 대신 통일부의 기능을 외교부로 넘기려 했다.
이 같은 논리는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 3000구상'으로 발전했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남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10년 후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린다는 생각이었다.
이처럼 이명박정부는 비핵화라는 큰 목표를 제시했지만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중간단계의 실천방안이 부족했다. 그 결과 표면적으로는 국제룰을 강조하면서도 북한과 '정상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는 방법론이 미흡했고 남북관계는 경색됐다.
더구나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사건과 2010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국제룰을 적용할 타이밍도 놓쳤다.
박근혜정부가 국제룰을 통해 관계 개선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점진적으로 북한과 신뢰를 쌓아나가려는 시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 정부도 이명박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 목표로 추구하지만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실현 가능하다고 보는 점에서 다르다.
이보다 앞선 김대중ㆍ노무현정부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달랐다. 남북관계에서 국가 정체성 보다는 민족 정체성을 앞세웠기에 국제룰이라는 보편적 행동규범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두 정부가 10년간 추진했던 대북지원을 놓고 이후 퍼주기 논란이 벌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사정원기자 sj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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