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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무작정 먹어야만 했다… 금지된 것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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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위해 무작정 먹어야만 했다… 금지된 것들까지도

입력
2013.08.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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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똥·목피·人肉 먹었던 중국 허난성의 대기근 추적잔혹한 인간의 생존본능… 위정자 탐욕·무책임 더해진 '짐승 같은 사회' 고발

길거리의 시체는 밤 사이 허벅지나 팔 한 쪽이 없어지곤 했다. 친딸을 먹어 치운 부부가 잡히기도 했다. 기존 고기 맛과 좀 다른 얼린 고기들이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만두를 파는 노점이나 솥 요리를 지고 돌아다니는 장사꾼들이 파는 음식을 먹다 손톱을 발견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이 엽기적인 상황은 픽션이 아니라 1942년 중국에서 일어난 실제다. 3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허난 대기근의 실상과 원인을 추적한 이 책은 의도적으로 지워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복원한다. 당시 참상을 담은 소설이 지난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허난성 지역 신문인 '허난상보'는 세 명의 기자로 특별취재팀을 꾸렸다. 기자들은 허난성이 보관하고 있는 간략한 재해 통계와 문헌 자료, 기근 피해자 및 후손의 회고록과 인터뷰를 통해 없어진 기록의 퍼즐을 맞춰 나갔다.

허난은 중일전쟁 당시 후방인 쓰촨과 산시를 지키는 주요 전장이었다. 적군과 대치 과정에서 대기근이 확산되었으나 국민당 총통이던 장제스는 일본군의 진격을 막기 위해 화위안커우 제방을 폭파해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황하의 거센 물줄기는 허난, 안후이 인근 44개 현을 덮쳤고 농지 면적은 3분의 1로 줄었다. 이후 가뭄이 들이닥쳤고, 메뚜기 떼가 출현하면서 허난 지역은 지옥으로 변했다. 하지만 '군사 제일'을 내세워 재해를 모른 체 한 장제스와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부패한 관리들 때문에 구호를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교통 사정 역시 극도로 열악해 피난도 여의치 않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든 만원열차에 올라 탔고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은 이가 부지기수였다. 1942년 허난은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들의 땅이었다.

인민들은 베개나 말 안장 속에 채워 넣었던 묵은 쌀겨까지 털어 먹었고, 전쟁 전 0.6위안 정도 하던 밀 한 근 값은 1943년 봄이 되자 300위안에 달했다. 수백 배 넘게 치솟은 식량비는 사람의 값을 한 끼 식사만도 못하게 떨어뜨렸다. 초근목피와 기러기 똥으로 연명하고 배고픔을 잊기 위해 흙을 집어 먹으며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길거리에 널린 시체를 먹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고 산 사람들은 군대에 징집되거나 피난을 가거나 홍등가에 팔려 가야 했다.

책은 1942년 허난 대기근이 끔찍한 참상으로 번진 진짜 원인은 위정자들에게 있다고 지목한다.부패한 지방 관리와 안위만을 중시한 중간 간부들, 그리고 모든 사정을 알고도 중일전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제 사회의 이목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묵살한 장제스 등이 키운 인재라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대기근이 발생한 지 1년 뒤인 1943년이 되어서야 구휼사업을 시작했는데, 곰팡이가 핀 보리 이삭을 배급했고 비싼 값에 구휼미를 사도록 강요해 분노를 샀다. 게다가 지폐로 배부된 구호기금은 은행에서 17%의 비싼 수수료를 떼고서야 잔돈으로 바꿀 수 있었다. 운송 차질과 중간 착복으로 구휼미는 인민의 손에 닿기까지 대부분 흩어졌다. 성 정부의 관리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장제스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다. 결국 인민들은 1944년 일본군과 싸우고 있는 5만명의 자국군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는데 훗날 '허난 사람은 매국노'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중일전쟁 당시 허난에서 징집된 군인 수와 군량미 공출량이 전국 1위였다는 사실은 수탈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방증한다.

인민 구제사업을 끌어낸 것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보도였다. 중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충칭에 주재하던 종군기자 시어도어 H.화이트가 지역 신문 '대공보'에서 본 기사가 계기가 됐다. 전시 상황을 과장해 보도한 기사들 속에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실린 허난 재해 실록이 그것이었다. 당시 대공보는 이 기사와 관련 사설을 실었다는 이유로 정간을 당했다. 허난 상황을 알리는 데 앞장선 중국 관리도 있었다. 국책 자문기관 국민참정회 위원인 궈중웨이는 고위층 앞에서 통곡하며 청원을 올렸는데, 인민들은 관리에게 가장 영예로운 칭호인'청천(靑天)'을 그에게 붙여주었다.

국민당 장제스의 실정을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을 출간한 곳은 중국 국학의 메카로 알려진 중화서국이다. 최근 등을 출간한 저자 두빈을 구속 수감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정부의 이중잣대를 보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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