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이 목까지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동이 이어졌다. 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정말 마법 같은 영화다."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인 동명의 만화 시나리오를 썼던 뱅자맹 르그랑씨는 영화를 본 소감을 밝히며 눈을 붉혔다.
15일 오후 부천국제만화축제장의 한국만화박물관에선 '설국열차' 상영에 이어 원작자와 봉준호 감독이 관객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원작의 그림 작가인 장마르크 로셰트씨도 영화를 본 건 이 날이 처음이다.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보고 촬영 현장에도 가봤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크게 다르다. 많이 각색했지만 원작에 충실하다. 24, 25살에 시작했던 작업이 이렇게 영화로 완성되는 걸 보고 벅찬 감동을 받았다."
'열차라는 밀폐 공간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냐'는 로셰트씨의 질문에 봉 감독은 "어렵지만 그게 매력이었다"며 "원작 1권에서는 꼬리 칸에서 출발해 엔진실까지 가는 구조를 가져왔고, 2, 3권에서 다룬 거짓과 진실의 문제를 영화에 집어넣으려 했다. 당신이 만든 서랍 감옥 등 시각적 디테일도 많이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대담에 앞서 오전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르그랑씨는 '설국열차'의 기원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원작자는 자크 로브다. 1970년대에 알렉시스란 작가와 일을 하다가 알렉시스가 4페이지까지 그리고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작업이 멈췄다. 이후 로셰트와 작업을 재개해 1984년 1권이 출간됐다. 그로부터 20년 뒤, 로브도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설국열차'를 더 살리고 싶어한 로셰트가 주변 시나리오 작가를 물색하다 내가 투입된 것이다. 이후 2,3권이 완성됐다. 열차는 자크 로브가 처음 착안한 아이디어지만 내 생각엔 어딘가를 향해 굴러가는 하나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원작자들은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다. 르그랑씨는 엑스트라로, 로셰트씨는 초상화를 그리는 손으로 나온다. 르그랑씨는 "커다란 하얀 수염을 붙이고 모래 먼지를 뒤집어쓰며 엑스트라 역할을 했던 게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로셰트씨는 "촬영지 인근 호텔에 머물며 길에서 지저분한 종이를 주워 영화 속 그 그림들을 그렸다. 열악한 열차와 같은 상황을 만들려고 종이를 더 지저분하게 훼손시키기도 했다. 여러 대 카메라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게 매우 어려웠지만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과 판권 계약을 하기 전 프랑스 감독들로부터 세 차례 영화화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로셰트씨는 "두 번은 가벼운 수준이었고, 한 번은 진지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거절하기를 잘 한 것 같다. 그 때가 1980년대라 이 이야기를 실감나게 만들 테크닉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봉 감독을 선택한 게 아니라 봉 감독이 우리를 선택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다 본 건 아니지만 '괴물' '살인의 추억' 등을 보며 퀄리티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르그랑씨는 봉 감독과 인연이 있었다. 봉 감독이 칸영화제에 '괴물'을 들고 왔을 때 점심에 초대해 식사를 하며 좋은 친구가 됐다고 한다. 전부터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는 그는 "주역을 읽었고 그 이야기를 3권에 넣었다"며 "그 인연으로 동양 감독의 시나리오로 발탁된 게 아닐까 싶다. 기분 좋은 우연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선 최근 웹툰 등 만화가 원작인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로셰트씨는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것은 프랑스, 미국도 마찬가지인 세계적인 현상"이라며 "기술의 발전으로 만화만의 표현이 이젠 영화로도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원작자로서 자신이 만들어낸 창작물이 제2의 창작자에 의해 다시 해석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큰 기쁨이고 또 다른 창작의 소스를 얻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르그랑씨도 "봉 감독 같은 위대한 감독에 의해 내 작품이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은 영광"이라며 기뻐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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