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에 대화록 보관 지시한 盧 前대통령이 삭제 지시 의문" 일각선 "선의로 폐기했을 수도"회담 배석 대화록 제작 책임자 "盧 삭제 지시 진술" 보도에도 해명조차 않는 점도 석연찮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이 야기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사건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여야 열람위원들이 국가기록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사초를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참여정부가 기록을 이관하는 과정에서 누락 또는 삭제했을 가능성, 이명박 정부 이후 삭제됐을 가능성, 그리고 아직 찾지 못했을 가능성 등 크게 세가지로 갈린다. 검찰이 이 사건을 넘겨 받음에 따라 검찰 수사에서 실종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대화록 삭제 동기 의문
대화록 실종 사건에서 우선 눈 여겨볼 대목은 동기 부분이다. 참여정부 관계자들은 “노 전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이 참고하게끔 대화록을 국정원에 남겨 뒀는데, 국가기록원의 대화록을 없앨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고 입을 모은다. 대화록 내용을 아예 숨길 생각이었다면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도 폐기했을 것이란 얘기다.
노 전 대통령이 국정원에 대화록 한 부를 보관토록 지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경수 당시 청와대 연설기록 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 당시의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도 국정원이 기밀 문서로 보관해왔기 때문에 국정원이 후일 정상회담에 대비해 참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노 전 대통령이 악의적 목적으로 대화록을 폐기할 이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선의의 의도가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폐기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화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면 최소 15년 동안 후임 대통령조차 열람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 경우 국정원에 보관된 대화록은 똑같은 문서인데도 후임 대통령이 볼 수 있어 두 문서의 지위가 충돌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충돌을 피해 후임 대통령이 자유롭게 대화록을 참고할 수 있도록 국가기록원의 대화록을 삭제하거나 아예 이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대화록 키 쥔 조명균 비서관의 이상한 침묵
대화록 실종 의혹이 커진 데는 대화록의 키를 쥐고 있는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의 침묵도 한몫하고 있다. 조 전 비서관은 2007년 10월 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해 대화내용을 녹음하고 대화록을 최종적으로 만든 실무 책임자다. 그는 대화록 최종본을 전자문서로 만들어 청와대 전자문서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서는 이후 이창우 당시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이 절차대로 지정기록물로 분류하고 안보정책비서관에게 돌려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을 통해 대화록의 문서처리가 완료됐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는 게 참여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핵심 당사자인 조 전 비서관이 올 초 검찰에서 “대통령의 삭제 지시가 있었다”는 진술을 했다는 보도도 나왔으나, 이에 대해 해명조차 하지 않은 채 언론과 접촉을 끊고 있다. 노무현재단 측은 “조 전 비서관이 그런 진술을 하지 않았으며 삭제 지시도 받은 바 없다고 연락을 해왔다”고 했으나, 당사자가 직접 나서지 않는 점은 석연찮은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 파기 가능성
이명박 정부에서 정치적 목적 또는 대통령기록관의 관리 부실로 삭제 됐을 가능성도 남아있다.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이 기록관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기록물이 어떻게 관리됐는지 알 수 없다”며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화록 실종이 드러나기 전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국정원에서 생산한 대화록이 원본이며 국가기록원 내 대화록 존재 여부는 모른다고 답변한 것도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국정원이 대화록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안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여당 측은 “국가기록원의 문서 보관 관리 시스템상 파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일축한다.
이지원 구동시 윤곽 드러날 듯
일각에서는 대화록을 아직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대통령기록물이 청와대 문서 관리 시스템인 이지원에서 국가기록원의 문서관리시스템인 ‘팜스’로 이관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누락돼 이지원에는 문건이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이 13일 이지원 시스템을 구동하기 위해 검찰이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조만간 문건의 존재 여부는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지원에서도 대화록을 찾지 못한다면 참여정부 시절 대화록이 삭제됐을 가능성이 높아 친노 측으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hk.co.rk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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