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태는 언론사주의 부패와 전횡, 편집권 독립 규정의 실효성, 저널리즘의 가치 등 여러 과제를 언론계에 던졌습니다. 그 중에서 이번 사태 내내 머리를 짓누른 것은 언론과 자본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었습니다. 한국일보 사태의 발단이기도 했고, 앞으로 한국일보가 선택해야 할 길도 바로 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은 기업입니다. 일정한 수입과 수익이 있어야 운영이 가능한 사기업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이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반면 언론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 올바른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합니다. 공공성이 이윤을 뛰어넘는 더 소중한 가치인 것입니다. 언론기업이라는 용어에는 다분히 그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지난 주 미국 언론에 지각변동이 일었습니다. 136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적인 권위지 워싱턴포스트가 아마존닷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게 매각된 것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몰고 온 종이신문 업계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쳤습니다.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신문산업은 상황이 훨씬 심각합니다. 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지난해 주요 35개 신문사의 당기순이익이 70% 가까이 급감했습니다. 2010년에 29%였던 가구 신문구독률은 불과 2년 만에 절반도 안 되는 11.6%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이 가져온 언론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미국보다 크면 컸지 작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 신문이 부닥친 위기의 원인이 단순히 뉴미디어만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그보다는 훨씬 뿌리가 오래되고 깊습니다. 우리 언론의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 언론은 독재정권 시절 급성장을 했습니다. 군부정권은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대신 당근을 듬뿍 줬습니다. 구멍가게에 불과했던 주요 언론사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 중견기업 수준으로 고속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주는 특혜는 결국 독배가 됐습니다. 특혜와 유착에 길들여진 언론은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자생력을 잃었습니다. 민주화와 외환위기 이후 권력의 지원이 사라지면서 허약한 몸집이 드러나게 됐고, 여기에 인터넷의 등장으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겁니다.
우리 신문의 수익 구조를 보면 후진성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구독료 수입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이 기업 광고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콘텐츠의 질을 기반으로 독자들의 선택에 의해 매출이 이뤄지는 게 정상적인 구조인데 우리는 광고 비중이 절대적인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익성보다는 수익성이 우선시되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광고주와 사주의 영향력은 커지고,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신문의 질은 저하되고, 독자들은 외면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론재단이 지난해 언론인에 대한 일반인의 신뢰도를 5점 척도로 측정한 결과, 2.81점으로 2010년의 3.22점에 비해 크게 낮아졌습니다.
우리 신문이 살 길은 잃어버린 독자들의 신뢰를 되찾는 것밖에 없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유료화 정책이 성공을 거둬 신문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사의 콘텐츠만 좋다면 인터넷 시대에도 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신문도 결국 콘텐츠 유료화로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돈 내고 볼만한 콘텐츠는 없는데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은 방기하고, 정파성에 갇혀 있는 현실에서 얼마나 독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 결국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만이 신문이 사는 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것이 시급합니다. "신문의 존재 이유는 소유주인 내가 아니라 독자들"이라고 강조한 미국의 자본가가 부럽고, "우리는 계속 진실을 추구할 것"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언론이 부럽습니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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