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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8월 14일] 시간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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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8월 14일] 시간화폐

입력
2013.08.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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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러 갔다. 깜짝세일 코너에서 부추 한 단을 100원에 팔고 있었다. 100원이면 거저잖아? 부추전이나 해먹을까 싶어 세일 물량이 동나기 전 얼른 바구니에 넣었다. 그런데 웬걸. 싼 게 비지떡이라더니 상태가 영 좋지 않아 시들고 물크러진 끝을 다듬는 데만 족히 한 시간. 제 값의 부추가 한 단에 2000원이었으니, 나의 한 시간이 1900원인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순간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일상의 사소한 우연으로 빚어진 잠깐의 시간조차 돈으로 환산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단 부추를 다듬을 때뿐이겠는가. 언젠가 시간 자체가 화폐로 통용되는 미래에 대한 SF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 세계에서는 커피 한 잔에 4분, 버스 요금으로는 2시간을 지불한다. 하루 꼬박 일하면 30시간이라는 급여를 받고, 도박으로 왕창 시간을 따면 남은 수명이 500년으로 늘어난다. '시간은 돈'이라는 차갑고 얄팍한 격언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가상세계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면 이미 내가 그 세계 속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증권사에서 승승장구하던 친구가 술김에 한 넋두리가 떠오른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너랑 노닥거리는 시간도 아까워. 잠자는 시간도 아깝더니 결국 불면증이야. 자는 동안 기껏 쌓은 실적을 까먹는 것 같아 잠도 안 온다니까…" 부추전을 부치고 있자니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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