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음성군 생극면에서 산란계 1만 마리를 키우는 이레농장의 이창기 대표는 12년째 친환경 달걀농장을 운영하다, 지난해 7월11일 정부로부터 동물복지인증농장 1호 인증을 받았다. 좁은 닭장에서 흙 한번 보지 못하고 알만 낳아야 하는 보통의 양계장과 달리, 이곳 닭들은 흙을 밟고 공기와 바람을 쐬며 그늘에서 쉴 수도 있다. 홰(닭들이 놀거나 잠을 자기 위해 올라가 있는 나무)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충분한 물과 무항생제 사료, 건초까지 먹는다. 양계장 1㎡당 5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이는 정부의 동물복지농장 인증 기준인 1㎡당 9마리보다도 훨씬 쾌적한 환경이다. 좋은 환경에 기른 닭들이 낳은 말 그대로 '착한 달걀'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효과가 거의 없다고 했다. 판매량도 판매가격도 인증 전후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소비자들이 아직까지 일반달걀과 동물복지달걀에 대한 구분을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인증제도만 만들고 유도할 것이 아니라 이를 알리는 데도 힘을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인증제는 국가에서 정한 동물복지 기준에 따라 인도적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농장에 인증하고, 이 농장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에 '동물복지' 마크를 표시해 판매하는 제도. 2012년 농장동물의 복지수준을 높이기 위한 동물보호법이 전면 개정되고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에서도 동물복지가 의제로 등장하면서 도입됐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지난해 7월 동물복지 축산농장 12곳을 처음으로 인증했다.
현재 국내에서 동물복지인증을 받은 산란계 농장은 41곳으로 시행 1년만에 30곳이 늘었다. 인증을 받으려면 산란장소, 조명, 사료량 등 100여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기준이 엄격하다 보니 일반 양계장에서 100마리 당 90개의 알을 낳는다면 평사사육(땅에서 기르되 실내)은 80개, 방사사육(별도의 방목장)은 70개에 불과할 정도로 생산량은 떨어진다.
가격이 비싸지는 건 당연한 결과. 여기에 달걀의 품질을 좌우하는 유통비용까지 더해지게 된다. 경남 하동에서 2만마리를 자유방목하는 청솔원의 정진후 대표는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사육을 하더라도 신선도가 떨어지면 불량식품이 된다"며 "하동에서 서울까지 월 700만~800만원의 물류비용을 들여 1일 1배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동물복지인증달걀 가격은 6,100원(15입)으로 일반 제품(3,800원)보다는 약 60%, 무항생제방사유정란(5,700원)보다도 7%가량 비싸다. 이마트 관계자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무항생제 제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지만 반면 동물복지인증달걀에 대해서는 고객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어 비싼 가격을 주고 살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며 "전체 달걀 판매량 가운데 2.3%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사실 동물을 배려하고 가격이 비싼 동물복지달걀이 일반 달걀보다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고 공식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닭들이 면역력이나 질병에 우수한 것은 입증됐고, 행복한 닭 들이 낳은 달걀이 일반 달걀보다 오메가3 등을 더 함유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들도 나와 있다는 게 농림부와 동물단체의 주장이다. 국립축산과학원 전중환 박사는 "동물복지인증 취지 자체가 좋은 품질의 축산물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축산물을 획득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고 배려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가격이 좀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물복지인증 농가들은 지금 가격도 비싼 건 절대 아니라는 입장이다. 부지와 축사, 노동력 등이 많게는 5~10배 이상 들어가는 것에 비해 가격은 일반달걀의 2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림부 측은 홍보의 부족을 인정하며 앞으로 신문과 여성잡지 등을 통해 동물복지인증 홍보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농림부의 한 관계자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현재 생산비용과 소비자가격 차이 부분을 보전하기 위한 직불금의 지급단가와 방식에 대해 연구용역을 의뢰한 상황으로 내년부터 직불금 지급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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