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해 군사분계선의 문제 있습니다"ⓐ라고 운을 떼며 NLL과 관련한 대화를 시작했다. 어찌보면 NLL을 '굳건한 영토'로 간주하는 우리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난 인식이다.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이 논란을 빚는 것은 이처럼 NLL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부터 파격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NLL은 분단 현실에서 수많은 장병들이 목숨 바쳐 지켜낸 곳이다. 1999년,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과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으면서 NLL은 대북 안보태세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서해 최전방의 긴장은 정점에 달했고 NLL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성역으로 인식됐다. 올해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았지만 NLL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이 여전히 더딘 이유다.
이와 달리 노 전 대통령은 NLL을 해상에 설정한 남북간의 '불안정한 경계선'으로 보고 있다. NLL을 지칭하면서 금기어와도 같은 '타협'이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한 것도 같은 인식의 선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국제법적 근거도 논리적 근거도 분명치 않다"며 NLL의 법적 지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괴물처럼 함부로 못 건드리는 물건"ⓑ이라면서 NLL을 둘러싼 통념적 사고의 경직성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은 회담에서 NLL을 먼저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김 위원장을 서서히 끌어들였다. 이에 김 위원장은 동의하면서도 해상경계를 다시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제서야 노 전 대통령은 "위원장께서 디딤돌을 하나 또 만들어주시라"면서 비로소 NLL로 화제를 옮겼다. 처음부터 NLL 문제를 꺼내 발목이 잡힐 경우 회담 전체가 틀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NLL 자체를 목표로 보지 않고 회담 성과의 수단 정도로 회담에 임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NLL을 당시 회담에서 3대 의제로 제시한 ▦한반도 평화정착 ▦남북 공동번영 ▦화해와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극복의 대상 정도로 평가했을 수 있다.
하지만 국민정서를 무시하면서 마치 NLL을 볼모로 회담을 이어가는 듯한 노 전 대통령의 화법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많다. 민간 전문가가 아닌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발언이라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인 2007년 11월 1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참석해 "국민적 합의가 끝나지 않았으므로 NLL을 안 건드리고 왔다"고 말한 것은 자신의 발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고 세간의 우려를 씻어내기 위한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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