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가장 덥다는 말복답게 서울 기온이 올 여름 최고인 33도까지 치솟은 12일 오후 동대문종합시장. 푹푹 찌는 열기를 뚫고 지게에 원단을 가득 실은 한 남성이 상가 계단을 한 발짝씩 힘겹게 올라갔다.
상가 옆 그늘에서는 다른 지게꾼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땀을 식히고 있었다. 서울시내 대부분의 시장에서 지게꾼이 사라졌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약 50명이 지게에 짐을 지고 시장 곳곳을 누비고 있다. 평생 지게로 먹고 살았다는 50대 남성은 "이 더위에 6, 7층까지 올라가려면 등골이 휘지만 아들 딸 키우려면 어쩌겠나"고 말했다.
이달 초부터 살인적인 염천더위가 계속되자 서민들이 격한 숨을 토해내고 있다.
주택이 밀집한 서울 서초구 잠원동 한 대기업 계열 마트에서 3년째 배달을 하는 신모(48)씨도 요즘 수박 한 통, 생수 한 팩 같은 소량 배달이 늘어 매일 녹초가 된다. 마트 간 '1만원 이상 무료배달' 경쟁 탓도 있지만 고객들이 무더운 날씨에 짐 드는 것을 피하느라 배달을 선호하는 탓이다. 김씨는 "한 집 갔다 오면 땀으로 범벅이 되는데 보통 하루 50건을 배달하고 그 중 3분의 1이 점심시간에 집중된다"며 "엘리베이터 없는 낡은 건물이면 한숨부터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서 노인과 노숙인 등을 위해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사)해돋는마을 박준용 부목사는 직원과 함께 매일 땀방울을 비처럼 쏟아낸다. 주방 열기 속에서 보통 수백 인분을 단시간에 조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 부목사는 "전기료도 만만치 않아 에어컨은 식사시간에만 잠깐 켠 뒤 끈다"며 "넉넉하지는 않아도 이웃과 나눈다는 보람으로 직원들이 휴가도 미루고 꾸려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경남 함양군 기온이 38.4까지 치솟고 대구(37.9도) 경남 밀양시(38.1도) 경북 경주시(37.9도) 등은 각각 올 여름 최고기온을 기록하는 등 폭염이 연일 계속됐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전국에서 8명이 숨졌고, 11일 오후 부산 금정구에 서 독거노인 이모(77·여)씨가 고열을 호소하며 실신하는 등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전북에서만 닭과 오리 31만여 마리가 폐사하는 등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가축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찜통더위에 전력난까지 겹치자 개학을 연기하거나 휴업하는 학교들까지 생겼다. 강릉 율곡중학교가 13일 개학을 19일로 연기하는 등 강원도내 10여 학교가 개학을 미뤘고, 충북보은고도 개학을 19일로 한 주 연기했다. 기상청은 이번 주말까지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다 이달 하순은 돼야 더위가 한풀 꺾일 것으로 내다봤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송은미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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