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34)씨는 요즘 저축상품만 둘러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1년짜리 정기예금(원금 3,000만원), 3년짜리 적금(원금 1,800만원) 등의 만기가 줄줄이 돌아오는데 새로 넣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 김씨는 "4%대 예ㆍ적금 금리는 반 토막 난데다 서민을 위한다는 재형저축 역시 장기상품이라 출산이나 육아휴직 등으로 수입이 불규칙해지는 가정은 가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서민금융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서민들의 종잣돈 마련 기회는 갈수록 줄고 있다. 은행들이 저금리 기조, 저수익 시대 등을 이유로 예금 금리를 낮추고 상품 개발에 소홀한 탓이다. 금융당국의 일방 통행(은행 압박)과 은행들의 무성의로 서민금융상품이 겉돌고 있는 셈이다.
최근 출시된 '7년 고정금리 재형저축'이 단적인 사례다. 지난달 29일 나온 이 상품은 은행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판매실적이 1,000좌, 1억원 미만에 불과하다. 금리보장 효과로 서민들의 관심이 클 것이란 금융당국의 호언장담을 서민들이 철저히 외면한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문의하는 고객도 극소수고 은행 차원에서 판매를 종용하는 분위기도 아니라 실적이 미미하다"고 말했다. 5개월 전 3년 고정금리, 이후 4년 변동금리를 기본 틀로 하는 재형저축이 나왔을 당시만 해도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실적을 공개하고 경품, 우대금리 등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펼쳤던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고정금리 재형저축은 무엇보다 금리 경쟁력이 떨어진다. 책정 금리가 7년간 3.5%(최고금리)로 은행마다 붕어빵처럼 같은데다 기존 재형저축(4.5%)보다 1%포인트나 낮다. 게다가 당국 압박에 억지로 내놓다 보니 판매 은행이 기존 재형저축의 절반수준(16→9개)으로 확 줄었다.
수요 부족도 한몫하고 있다. 가입대상이 연봉 5,000만원 이하 근로자, 종합소득 3,500만원 이하 개인사업자인데, 가입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3월에 나온 재형저축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기존의 재형저축(3년 고정금리) 계좌 수는 167만좌, 납입금액은 7,591억1,400만원이고, 가입 대상자는 800만~90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꾸준한 증가세라기보다 가입 첫날 28만 계좌에 200억원 이상 몰리는 등 초반의 반짝 인기에 기댄 측면이 크다. 최근에는 가입이 하루 2만 계좌 수준에 머물고 있고 해지비율도 5~10%에 이른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단기 저축상품에 세제 혜택을 주거나 중도해지 시에도 어느 정도 약정금리를 보장해 주는 등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서민금융으로 포장된 대출상품 역시 찬밥 신세이긴 마찬가지다. 지난달을 기점으로 은행들이 금융감독원 주문에 따라 연 10%대 중(中)금리 신용대출상품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우리은행(우리희망드림소액대출)이 겨우 10억원, 하나은행(이지다이어트론) 14억원 등이다. 은행 관계자는 "낮은 금리로 서민한테 돈을 빌려주자는 당국의 취지는 좋으나 실상은 갚을 여력이 없는 8, 9등급 저신용자한테 돈을 떼일 각오를 하고 대출을 해주라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적극적인 판매가 되겠느냐"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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