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매년 쪼그라들던 우리나라 가계의 흑자 규모가 지난해 이례적으로 개선됐다. 하지만 이는 소득이 늘어서가 아니라 빚을 갚느라 여유 없는 살림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소비를 줄인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그늘인 셈이다.
한국은행 계량모형부 황상필 팀장과 정원석 조사역이 12일 발표한 '가계수지 적자가구의 경제행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가계소득 대비 가계수지(소득-지출) 비율은 2008년 19.8%에서 2010년 18.5%까지 떨어졌다가 2011년 18.9%, 2012년 21.1%로 개선됐다. 같은 기간 적자가구의 소득 대비 적자 비율도 -27.0%(2008년)에서 -24.1%(2012년)로 호전됐다.
이는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상황에서 가계부의 사정이 오히려 나아졌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부채 상환과 소비 위축이 복합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2012년 평균 소비성향(가처분소득 대비 소비 비율)은 0.74배로 2003∼11년 평균(0.77배)보다 낮아졌고 적자가구의 경우에도 같은 기간 1.36배에서 1.32배로 하락했다. 소득대비 부채(카드 사용액 포함) 상환 비율도 2004년 약 20%에서 2012년 30% 수준으로 높아졌다. 소비는 줄이고 빚은 더 갚았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그러나 적자가구 비중이 높은 60세 이상 고령층이 갈수록 증가하는 상황인 만큼 이들에 대한 소득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령층 적자가구의 절대다수(약 80%)가 소득 하위 20%(1분위)에 속해 있어 경제 전반의 소비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60세 이상 적자가구는 흑자가구보다 자동차 구입ㆍ유지 지출 비중이 2%포인트 가량 높았는데 이는 "노점상 같은 생계형 차량 수요가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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