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영화잡지서도 인터뷰섬세하고도 명료한 글에 매료… 트위터·블로그 통해 큰 인기젊은 시인들의 난해시 '번역' 특기 "나는 젊은층 이해하려는 노인"사십대 중반에 '야메 등단'"교수·편집주간·평론 겸하며 상상력 돋는 밤에만 글써"
지난 5월 문학평론가 황현산(68)은 영화감독 송해성, 댄스그룹 신화, 개그맨 양상국과 함께 남성잡지 인터뷰 코너에 실렸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고작 두 권의 평론집을 내고 이제 막 첫 산문집을 내려는 평론가의 기사를, 담당 기자는 원고를 구해 보면서 출간 한 달 전에 미리 썼다. 패션, 라이프스타일, 자동차 트렌드와 섹스 기사 사이에 문학평론가의 인터뷰가 실린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은 책 출간 후 황 평론가가 영화 잡지 인터뷰 코너에 등장하면서 이어졌다.
문인들은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그의 첫 산문집 문구를 퍼 나르며 연신 '좋아요'를 외쳤고, 황현산의 글을 좋아하는 것이 이 시대 가장 세련된 취향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사람들처럼 단 한 번 열린 그의 산문집 낭독회에 일제히 참석했다. 입소문을 타고 산문집(난다 발행)는 출간 50일 만에 4쇄를 찍었다.
"처음엔 반가웠는데 자꾸 그러니까 면구스럽지…."
12일 만난 그는 이런 반응에 대해 연신 겸연쩍어하면서도 자신에 관한 문인들의 글을 자꾸 찾아 읽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경제학자인 아들의 말을 덧붙여 이 인기를 이렇게 분석했다.
"요즘 베스트셀러는 세 가지 범주로 나뉜대요. 힐링, 자기계발, 분노. 내 책은 이 중에 아무 것도 아닌데, 그래서 우리 아들 말이 '아부지 책 나오면, 조용필 음반하고 같이 팔면 좋겠다'(웃음). 내가 젊은 사람들 이해하려는 나이든 사람이라는 말이겠죠."
사실 그는 젊은 시절 몇몇 신문사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을 투고했던 문학청년이었지만, "(시 쓰려면)시간 낭비가 참 많겠구나"는 스승의 충고를 듣고 불문학자의 길만 걷다가 사십대 중반 문예진흥원(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한 잡지에 원고를 발표하며 '야매'로 등단했다. 잡지사가 동료 교수에게 청탁한 원고를 대신 쓰는데, 꼬박 한 달이 걸렸다.
겨우 평론 3편을 발표할 즈음 한 출판사의 편집주간을 맡게 되면서, 자신의 제자들이 문단에 데뷔하면서 중견 평론가가 됐다. 교수와 편집주간, 번역과 평론을 겸하는 그는 거의 항상 밤을 새워, 정확히 말해 밤에만 글을 썼다. 그는 이 대목을 소개하며, 이번에는 괴테 작품과 프랑스 속담을 빌렸다.
"대체로 새벽, 아침에 글 쓰는 사람들은 다작을 했어요. 빅토르 위고가 대표적이죠. 밤에 일하는 사람은 과작이에요. 브레히트 책이 딱 2권이잖아요. 대신 상투적인 말이 없고 정교한 글을 쓰죠. 에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란 유명한 문구가 있어요.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죠. 비슷한 말로 '밤이 선생이다'란 프랑스 속담이 있어요. 내가 그렇게 번역한 건데(웃음), 산문집 제목으로 썼죠."
꾸준히 평론을 발표했지만 "내가 제일 잘 하는 건 어려운 외국시를 명확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출신인 그는 말라르메, 앙드레 브르통 등 19세기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를 전공했는데, 덕분에 "번역어, 사투리, 판소리 리듬이 묘하게 섞인, 그런데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은" 독특한 문체를 갖게 됐다.
그는 남들이 잘 읽지 않는 시들을 번역했고, 섬세하고 사려 깊은 평론을 썼다. 몇몇 신문 칼럼을 통해 문인들은 그가 세상일에도 관심이 있음을, 길고 유려한 글뿐만 아니라 짧고 명료한 글도 잘 쓴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그가 젊은 문인들의 인기를 받게 된 건 아마도 2000년 중반 황병승의 첫 시집에 관한 비평을 통해서일 것이다. 퀴어 감성과 B급 정서가 다중 시점으로 폭발한 시집은 해석 불가한 난해시의 총체였고, 시단은 열렬한 환호와 맹렬한 비난으로 갈렸다.
어려운 시 해석하고 주석 다는 것이 특기였던 그는 이 시집의 맥락과 의미를 외국어 번역의 관점에서 들려주었다.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시를 외국시 번역하듯 해석해 그 의미를 다른 세대에 설명해주는 첫 번째 비평이었다. 그리고 미래파로 불린 독특하고 난해한 젊은 시인들의 시들을 차례로 '번역'하며 그는 가장 '핫'한 평론가가 됐다.
"어려운 글은 읽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반대합니다. 고등학교 때 읽고 이해 못했던 책을 대학 가서 이해하잖아요. 복잡하고 입체적인 생각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문장으로 표현해야 할 때가 있어요."
황 평론가는 "평론을 쓸 때 내 전략은 복잡하고 긴 문장과 짧은 문장을 하나씩 쓰는 것"이라며 "이번 책은 내가 쓴 가장 쉬운 책"이라고 말했다.
는 황현산의 세월이 담긴 산문집이다.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쓴 각종 칼럼과 산문을 묶은 책은 박정희 시대 우체국 풍경 말璨【?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로 끝맺는다. 남북 관계와 영어 강의, 이창동 영화에 관한 산문을 통해 노년의 평론가는 자신이 겪은 시대를, 켜켜이 쌓인 시간들을, 젊은 세대와 문학에 관한 애정을 들려준다. 사투리와 번역투와 판소리 리듬이 섞인 각 산문들은 수십 년을 뛰어넘어 놀랍도록 일관성을 갖는다.
"그때(문청을 그만두고 불문학에 몰두하던 시절) 제 스승께 작품을 이론에 대입하는 게 아니라, 작품에서 이론을 도출하도록 훈련 받았습니다. 나중에 평론가로 글을 쓰며 아주 큰 무기가 됐죠."
'지금 한국의 문인이 가장 많이 읽고 있는 책은 황현산의 산문집'이라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선언은, 그 특유의 화려한 비유와 수식을 감안하더라도 과히 과장이나 호들갑은 아닌 듯싶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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