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문화대혁명의 혼란을 초래한 마오쩌둥(毛澤東) 노선을 걷고 있다는 개혁파 원로의 비판이 나왔다. 개혁이 지지부진하면 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중국공산당 기관지는 개혁파를 미국의 대리인이라며 반격하기 시작했다. 보수파와 개혁파가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반대하다 실각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공산당 총서기의 비서 바오퉁(鮑彤ㆍ81)은 최근 시 주석을 향해 "마오쩌둥의 길을 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9일 전했다. 톈안먼 사건과 관련, 7년간 옥살이를 한 바오퉁 전 당 중앙위원회 정치체제연구실 주임은 시 주석을 마오쩌둥과 다를 게 없는 최고 지도자로 평가한 뒤 "그는 중국의 '병'을 치유하는 것 보다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바오퉁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요구한 활동가가 16명 이상 체포된 것을 지적하며 "시 주석이 억압만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오 전 총서기와 함께 개혁파 태두로 불리는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ㆍ71)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도 10일 경제관찰보(經濟觀察報)에서 "또다시 혁명을 불러오지 않으려면 지속적이고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라는 책의 독후감 형식으로 기고한 글에서 "당의 임무는 인민을 영도해 헌법을 제정하고 국가 기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해 민주주의와 법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파의 이 같은 목소리는 시 주석에 대한 실망감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 주석은 취임 당시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의 개혁 성향을 물려받았을 것이란 기대가 컸었다. 시 전 부총리는 문화대혁명으로 박해를 받았고 후 전 총서기 등 개혁파 인사에 우호적이었다. 시 주석도 취임 초 헌법과 법치를 강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최근 마오쩌둥의 군중 노선을 떠올리게 하는 부패 척결 정치 캠페인을 시작했다. 특히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5∼7일 사흘에 걸쳐 1면에 입헌정치 개념이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와해시키려는 미국의 여론전 무기라고 비난하는 글을 게재하고 입헌정치를 주장하는 세력들을 싸잡아 '미국의 대리인'이라고 비난했다. 이는 인민일보가 류윈산(劉云山)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의 지휘 아래 있다는 점에서 그를 중심으로 보수파가 반격을 시작했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보수파는 헌정이 강조될 경우 국가와 사회에 대한 당의 절대적 지도 체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 주석이 결국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외교관은 "시 주석 시대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당이 우선이란 보수파와 헌정이 우선이란 개혁파 사이의 사상 논쟁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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