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관치 논란이 금융권 인사를 마비시키고 있다. 일부 금융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두 달 째 공석이고, 새로 선임절차를 밟아야 하는 금융회사 CEO와 임원 인선 작업도 제자리 걸음이다. KB금융, 농협금융, BS금융지주 회장 경질에 과도하게 간섭했던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청와대 견제에 몸을 낮추면서 여타 금융단체의 인사까지 전면 중단된 것이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의 경우 지난달 29일 강영구 원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 났으나, 후임을 정하지 못해 권흥구 부원장이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후임 원장 선출을 위한 관련 위원회 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대행 체제의 장기화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보험개발원장 자리는 기재부나 금융위에서 낙점한 인사를 중심으로 공모 절차를 진행한 게 관례였기 때문에, 관치 논란이 가라앉기 전까지는 CEO 공백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거래소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김봉수 전 이사장 사임 이후 두 달째 공석이다. 거래소는 당초 6월12일 공모를 마감하고 지난달 초에는 이사장 후보를 추천할 계획이었으나, 이후 선임 절차가 전면 중단돼 김진규 직무 대행체제로 경영 공백을 메워가고 있다. 코스콤 역시 6월 초 우주하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나 후임 선임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으며, 금융감독원도 지난달 11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박수원 감사의 후임을 선임하지 못한 상태다.
신용보증기금도 안택수 이사장의 임기가 지난달 17일로 끝났지만 신임 이사장을 선임하지 못해 임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경우다. 한때 금융위 고위 간부가 후보로 거론됐지만"모피아(MOFIA·옛 재무부의 영문 약칭+마피아)가 금융기관을 장악한다"는 비판 여론이 일면서 공모 절차가 잠정 중단됐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의 경우 한달 넘게 계열사 사장 선임이 미뤄지고 있다.
주요 임원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는데도 선임 절차를 시작하지도 못하는 곳도 있다. 손해보험협회는 이달 26일 문재우 회장의 임기가 만료되지만, 손을 놓은 상태다. 관례대로라면 임기 만료 3주일 전(지난 주)에는 회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됐어야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협회 관계자는 "조만간 회추위가 출범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회추위에 참여하는 회원사들은 아무런 언질조차 받지 못했다.
이 같은 인사공백 사태는 '모피아들이 금융권 요직을 독식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청와대 내부에서 견제 여론이 거세 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공통된 분석이다. 또 최근 청와대 비서실장이 교체되면서 금융 공공기관장에 대한 검증 작업이 당초보다 지연되고, 인사공백 상태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홍익대 전성인 교수는 "기관장 선임과 관련한 의사결정이 너무 청와대 쪽으로 몰려 있어 청와대만 쳐다보는 상황인데, 비서실장을 교체하면서 다시 검증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한편 설령 선임 과정이 재개된다 하더라도 또다시 관치 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몇몇 기관장의 경우 여전히 관료 출신이 대기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인사검증 작업이 진행되고 최종 선임돼야 알 수 있다"며 "관치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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