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시중 대형마트에서는 우유가격이 반나절 만에 올랐다가 원위치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오전에 붙었던 인상된 가격 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원래 가격표로 대체됐다.
우유업체들이 애초 가격을 올리겠다고 한 것은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원유(原乳ㆍ축산농가가 우유회사에 공급하는 원우유) 가격 연동제에 따른 것이었다. 원유가격이 몇 년씩 묶여 있다가 한꺼번에 큰 폭으로 오르고, 이 과정에서 축산농가 우유업체 물가당국 3자의 갈등이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원재료(원유) 가격에 완제품(우유) 가격을 연동시키는, 말 그대로 가격을 시장원리에 맡긴다는 것이 원유가격연동제의 취지다. 원유가격이 ℓ당 834원에서 940원으로 106원(12.7%) 올라 이달 1일부터 적용되자, 우유업체들은 출고가를 ℓ당 250원을 올리기로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유업체들의 가격인상 시도는 무산됐다. 표면적 이유는 대형마트들이 우유업체들의 가격인상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 농협 하나로마트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이 출고가 인상분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자, 우유업체들은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유업체에 대해 대형마트는 갑(甲)이다. 갑이 거부하면 값을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대형마트들이 소비자가격 인상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생산업체들이 출고가를 올리면, 그에 맞춰 소비자가격을 올리면 그만이다. 그런데도 대형마트들이 이례적으로 우유값을 안 올리겠다고 한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들에겐 공포의 갑(甲)이나 다름없는 정부의 압박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달 대형마트 관계자들을 불러 사실상 우유 소비자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정부는 경제도 어려운 데, 국민 생필품목인 우유값이 오르는 게 싫었을 게다. 우유값이 오르면, 우유를 원료로 쓰는 빵 과자 아이스크림 커피 등 다른 제품가격이 줄줄이 오를 수도 있는 게 걱정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유가를 시장에 맡긴다는 원유가격연동제를 도입해놓고, 다른 한편으론 대형마트를 통해 가격을 통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개별품목의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MB정부는 임기 내내 강도 높은 물가통제를 실시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정권말 레임덕과 함께 묶어놓았던 물가가 한꺼번에 오르는 부작용도 경험했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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