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학회장을 지낸 김민환(68) 고려대 명예교수는 11일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및 파행 제작의 의미를 "이론적으론 이미 정리됐으나 아직 내재화하지 못한, 편집권 독립의 상식이 한국의 현실에 정착돼 가는 과정"으로 평가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서 만난 김 교수는 "신문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는 한국일보 창간사가 나온 맥락을 길게 설명함으로써, 언론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의 규범 해석을 구하는 물음에 답을 대신했다.
-한국일보 사태의 본질을 어떻게 보는가.
"경영자의 불법 행위에 대해 사원들이 검찰에 수사를 요구했다, 경영자는 인사권 행사로 이에 맞섰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이건 한 회사의 내부 갈등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일보사는 언론 기업이다. 언론 기업엔 언론의 자유, 혹은 편집권의 독립이라는 회사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공적인 가치가 있다. 비록 한 기업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사회의 기본 가치가 훼손된 일이 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가 꼭 기자의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사기업인 신문에서 기자들의 언론 자유는 발행인의 권리와 신문의 노선, 방침에 의해 제약된다'(본보 7월 30일자 '강병태 칼럼')는 관점도 있다.
"역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법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언론의 자유는 투쟁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민주주의, 또 주주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언론 자유'라는 개념엔 초헌법적인 성격이 분명 있다.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출자 비율에 따른 권한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선진 사회는 그것을 보장한다. 미국 수정헌법엔 기자들의 보도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법률 제정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까지 있다. 왜 그럴까. 부르주아 혁명의 시대부터 긴 세월, 언론 자유, 독립된 보도의 자유가 자유주의,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라는 인식에 합의해왔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언론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유주의도 가능했다. 사유재산의 좁은 원리로 그것을 부정한다면, 자유주의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공영방송을 포함해 여러 언론사가 편집권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데.
"시대가 달라지고 저널리즘의 형식이 달라졌지만 경영의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선진 사회에서 정착된 규범이 한국의 언론계에 도입돼가는 과정으로 본다. 결국은 순리대로 해결될 것이다. 기자들이 의지를 꺾지 않기를 바란다."
-냉정하게 말해 달라. 한국일보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난 굉장히 밝다고 본다. 괜한 덕담이 아니다. 현재 한국 신문시장에선 가장 정파적인 신문이 가장 대중적인 신문이다. 해외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상황이다. 그러나 선진 사회란 결국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지적 공중(公衆)'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다. 이미 포털 뉴스에선 정파성이 현저한 기사가 톱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도를 실천하는 언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 기자들의 책임이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완도=글ㆍ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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