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에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는데 앞장섰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오전 2시30분 노환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87세.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일본에서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따라 나섰다가 싱가포르를 거쳐 미얀마 양곤으로 강제 연행됐다. 고인은 이곳에서 일본군 성노예로 갖은 고초를 겪다가 광복 이듬해인 46년 귀국해 한국전쟁 중인 51년 가정을 꾸렸으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척추관 협착증 등 심신의 고통을 안고 어렵게 생활했다.
92년 위안부 피해자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경기 광주 '나눔의 집'에 입소한 고인은 95년부터 일본군의 만행을 해외에 알리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특히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민간법정)에 참석, 증언을 통해 위안부 강제 동원 등이 국제법상 전쟁 범죄ㆍ반인도 범죄임을 명확히 했다. 지난해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과 함께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을 세운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를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여생을 아들과 보내기 위해 지난해 12월 '나눔의 집'을 퇴소한 고인은 지난달부터 건강이 악화해 입원 치료를 받아 왔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6명 가운데 생존자는 57명뿐이다.
유족으로 두 아들이 있으며 빈소는 경기도의료원 포천병원, 발인은 13일 오전 9시30분. (031)539-9444.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