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에서 '세(稅)'자는 벼 화(禾)와 바꿀 태(兌)가 합쳐진 글자다. 바꿀 태가 여기선 '빼내다'는 뜻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래서 어원적으론 '수확 중에서 자유롭게 쓸 몫을 뺀 나머지로, 나라에 바치는 곡물'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가 나라에 내야 할 몫이냐다. 통치자는 대개 나라 곳간을 넉넉히 채워두려 했고, 납세자는 덜 내고 싶기 마련이었다. 세정이 문란하고 징세가 지나쳐 납세자의 원성이 폭발하면 흔히 민란과 혁명이 나고, 역사가 격동했다.
▲ 사료로 확인되는 세금 갈등의 역사만도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0년 무렵, 그리스인들이 이집트인들을 지배하면서 무거운 세금을 물리자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왕은 사태 수습을 위해 밀린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고 약속한 후 그 내용을 돌에 새겨 증표로 남겼다. 그게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스톤이다. 조세법률주의가 확립되기 이전 중ㆍ근세의 세금 갈등은 세계사의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 잉글랜드의 존 왕(1199~1216)은 탐욕스런 영토전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재정이 딸리자 귀족들에게 '방패세'라는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정치적 입지가 취약한 왕에게 반발해 오히려 역공을 가했고, 결국 왕은 세금을 새로 부과할 때는 귀족들의 동의를 거치기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합의를 토대로 근대헌법의 기원인 '마그나카르타(대헌장)'가 탄생했다. 프랑스혁명 역시 루이 16세가 증세를 위해 삼부회를 소집한 게 발단이 됐다.
▲ 백성은 지나친 과세보다도 사악한 과세에 폭발했다. 존 왕의 방패세도 그렇지만, 조선 후기 백골징포(白骨徵布)나 황구첨정(黃口簽丁) 같은 비리는 가히 망국적 폐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비과세감면 축소를 골자로 한 박근혜 정부의 세법개정안을 두고 증세냐 아니냐의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직접증세 여부를 떠나 납세자의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증세를 부정하긴 어렵다. 다만 이번 증세는 무상보육, 노인연금 같은 서민층의 복지확대를 위한 것이어서 최소한 사악한 증세로 몰아붙이는 건 맞지 않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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