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진행된 실전 수순을 잠시 되짚어 보면 흑1 때 백2가 시기 적절한 응수 타진이다. 백이 고분고분 4로 받아주는 건 굴욕적이라고 생각해서 김형우가 3으로 반발했지만 막상 4로 돌파 당하고 보니 단박에 왼쪽 흑돌이 답답해졌다. 물론 처럼 두면 간단히 두 집 내고 살 수는 있지만 대신 외곽을 완벽하게 틀어 막힌다. 이거야말로 과거 조남철 선생께서 자주 말씀하셨던 전형적인 '생이불여사(生而不如死, 살아도 죽은 것보다 못하다)'의 형태다.
그래서 김형우가 '쌈지 뜨면 지나니라, 대해로 나가라'는 바둑 격언대로 먼저 9로 중앙으로 머리를 내밀려 했지만 이때 류수항이 10으로 젖힌 게 또 다시 멋진 급소 일격이다. 1, 3이면 당장 4로 끊어서 아래쪽 흑돌을 다 잡아버리겠다는 뜻이다. 이건 물론 흑이 안 된다. 김형우가 할 수 없이 11, 13으로 연결했지만 14의 단수 한 방이 너무 통렬하다. 이래서는 당초 △ 때 흑1로 반발한 게 아무 의미도 없게 됐다. 여기서부터 백이 국면을 리드하기 시작했다.
박영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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