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부분의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는 필수 편의시설이고, 전망 엘리베이터나 인공지능형 또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등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백화점이나 병원의 엘리베이터에는 안내양이 있을 정도로 일반적인 시설물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의 기본적인 원리인 도르래는 기원전 200년경 아르키메데스가 처음 고안하였고, 1853년 미국의 오티스가 추락방지 안전장치를 발명하여 엘리베이터를 실용화하였다. 이후 수력이나 수압을 이용하거나 증기기관에 의한 구동방식으로 발전하였으며, 전동기를 이용한 엘리베이터는 1880년 독일의 지멘스사가 처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1940년 서울 종로의 화신백화점에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붐비는 쇼핑몰이나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항상 복잡하고 오래 기다려야 되는 경우가 많다. 쇼핑몰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따로 설치되어 있어 승객들을 분산시키지만, 움직임이 불편한 환자나 휠체어, 침상과 의료용품 이동에 함께 사용하여야 하는 병원의 엘리베이터는 이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삐 소리와 함께 "정원이 초과되었습니다. 마지막 타신 분은 내려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민망한 소리를 종종 듣기도 한다. 이렇게 타야 할 순간을 놓치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길고 지루하기 짝이 없다.
흔히 병원의 엘리베이터 앞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직원, 계단 이용하기 캠페인', '병원 안에서 특별히 시간 내지 않고, 건강에도 좋고, 고객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 바로 계단 이용하기입니다'. 엘리베이터를 추가로 설치하기 어렵기 때문에 병원은 주로 직원들에게 계단을 이용하도록 권유하는 방법을 쓴다. 그냥 고객을 위해서 양보하라고 하면 협조가 잘 되지 않으니까 '직원의 건강을 위해서'라고 꾀는 것이다.
계단 이용하기가 고객인 환자를 위하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의 이동 경로를 고려한다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병원 1,2층에 위치한 외래진료실에서는 한 장소에서 진료를 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탈 필요가 없다. 의료진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는 대부분 4층 이상에 위치한 병실로 가기 위하여, 즉 입원환자에 대한 처치를 하거나 회진을 하기 위한 경우이다.
그런데 더구나 요즘같이 30도가 넘는 날씨에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계단을 걸어 올라가 환자를 진료하려면 숨이 차고 땀에 젖어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입원환자의 경우에는 임상검사결과와 영상진단 사진 등을 꼼꼼히 챙기고 환자의 상태를 직접 점검하여야 하는데, 땀 냄새 풍기고 숨을 헐떡거리면서는 제대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병실과 검사실, 수술실, 처치실을 오르내려야 하는 병실 담당 의료진이 계단을 오르면서 체력을 다 소모하게 되면 아무래도 진료 업무에 지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말로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마냥 건강에 좋은 것일까? 계단 오르기는 좋은 운동으로, 열량 소모가 커서 다이어트에 효과적이고 근력과 심혈관을 강화시켜준다. 하지만 중장년층이나 무릎관절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무릎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올라갈 때는 자기 체중의 3~4배, 내려올 때는 7~10배의 하중을 받게 되어 연골이 손상되거나 무릎질환이 생길 수 있는데, 기온이 떨어져 근육이 위축되는 겨울철에 더 위험하다. 관절과 심장에 제일 좋은 운동은 수영이다. 또한 40대 이후 노안으로 인해 계단을 내려갈 때 초점이 맞지 않아 넘어질 위험이 있는데, 특히 다초점 안경을 착용하는 경우 계단이 움푹 파인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근 의료서비스라는 개념이 도입되긴 했지만 병원의 기본적인 역할은 환자의 치료와 국민 건강관리이고, 의료진은 적절한 컨디션과 환경 하에서 최고의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민과 독자들의 알 권리를 사명으로 하는 신문사에서는 기자들과 편집권이 존중되어야만이 올바른 언론이 담보될 것이다. 이번의 일련의 사태가 한국일보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화의대 목동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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