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에서 국민이 가장 짜증나는 것이 뭘까.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뜻도 어려운 영수(領袖)회담을 하느니 마느니 마냥 다투는 게 아닐까 싶다. 권위주의 시대도 아닌 마당에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만나 국민 세금으로 차린 밥 한 끼 먹고 얘기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옥신각신하는지 짜증스럽다. 국민 정서는 도통 모르는 저들끼리의 신선놀음으로 비친다.
권위주의 시대에도 영수회담이 정치 흐름을 바꾼 경우가 흔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에게 제법 큰 양보를 베풀어 막힌 정국을 풀었다. 민주 투사 야당 대표에게 정치자금에 보태라고 큰돈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두운 시대의 어두운 정치로만 여길 게 아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어제 "권위주의 시대에는 모르겠지만 정당이 할 일을 대통령과 담판으로 풀려는 생각은 문제"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들이 참석하는 5자회담을 제안한 것에 맞서 민주당이 영수회담을 고집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원내 문제가 포함됐다면 5자회담을, 그게 아니면 3자회담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언뜻 조리 있는 말이지만,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권하는 큰 정치는 모르는 모양이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엄중한 정국을 풀자고 단독회담을 제안한 것에 청와대가 5자회담을 역제안, 기싸움으로 흘러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 "단독회담 형식이나 의전을 따지지 않겠다고 했더니, 대통령은 여야 지도부 회의를 주재하려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그는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고도 말했다.
지루하나마 양쪽 말을 듣고 보면 답은 저절로 나온 성싶다. 대통령은 큰 힘도 없는 김 대표와 단 둘이 마주 앉기 싫으면 처음부터 3자회담을 제의할 일이었다. 5자회담이 협상용이라면 옹색하다. 김 대표도 애초 회담 형식을 따지지 않겠다고 말했으면, 3자회담 제안을 받을 일이었다. 이제 와서 단독회담 형식 등을 따지지 않겠다고 말한 거라니, 거기에 무슨 형식과 의전을 따질 일이 있는가.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는 말도 공연한 허세로 들린다.
국정원 선거 개입을 중심으로 대치한 정국을 대통령이 나서서 풀 때가 됐다. 국정조사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리 투쟁에 나선 민주당 대표와 만나 "책임을 떠나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정도로 위무하는 도량이 필요하다. 그래야 김 대표도 무더위와 위험이 도사린 거리를 벗어나 어깨를 펴고 회군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치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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