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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우스운 아파트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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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우스운 아파트 안내문

입력
2013.08.0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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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는 말 안 되는 말을 마구 써 붙이던 경비원이 그만둔 뒤, 우리 아파트의 안내문은 아주 세련돼졌다. 경비원 개인이 공책을 아무렇게나 북 찢어 엘리베이터 속의 거울에 붙여 놓던 것이 이제는 관리사무소 명의의 보기 좋은 안내문으로 바뀌었다. 지금 붙어 있는 안내문은 ‘층간 소음을 줄여주세요’다.

이건 사실 특정 시일까지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쉽게 말해서 마르고 닳도록 그대로 두어도 된다.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일. 방에서 뛰어놀면 안 돼요, 애완견이 짖지 않도록 해주세요, 특히 밤에 더욱 조용히 해주세요, 이런 것들이다.

보기 좋은 인쇄체 글씨에 항목마다 컬러로 그림이 곁들여져 있어 알기 쉽고 정감이 간다. 세탁기와 청소기, 피아노를 그려 놓고 ‘밤에는 참아주세요’라고 하는 식이다. 전문 일꾼이 못을 박는 그림에는 ‘이웃의 양해를 얻은 후 하셔야 해요.’라고 씌어 있다. 집안을 뜯어고치는 공사 말이다.

인터넷에는 재미있고 우스운 안내문이 많이 떠 있다. 이 마을이 어디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열매마을 11단지에는 창밖으로 이물질을 투척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네 가지를 예로 들었는데, 맨 먼저 이야기한 것은 담배꽁초,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다. ‘버릴 수 있는 것은 현금 귀금속 복권, 이렇게 딱 정했으니’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말이 우습지만, 나는 창밖으로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우선 놀랍다.

아파트의 체면과 위신을 생각해서 행동을 잘 하라는 안내문에도 우스운 대목이 있다. 이것도 어느 아파트인지 몰라도 주변의 철탑문제가 해결된 곳인가 보다. ‘당 아파트는 평수가 큰 고급 아파트로, 최근 철탑문제가 해결돼 집값이 오르고 있습니다.’ 하고 안내문은 시작된다. 아파트는 고급인데 주민들의 행동은 영 고급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낮 시간에 베란다에서 옷이나 이불을 터는 분들이 있습니다. 외부에서 보면 서민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이렇게 지적을 한 다음 이 아파트의 안내문은 ‘옷이나 이불을 털려면 낮이 아니라 밤 시간을 이용하여 고급스럽고 깨끗한 아파트 이미지를 위한 공동 노력을 해주십시오.’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대목이 웃기는 것이다. 남들이 안 보이게만 하면 된다는 식이다.

아파트에 살면서 가장 먼저 유의할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공동생활 규칙을 잘 지키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필요한 일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반상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일을 다루는 회의인데도 참석하지 않고 그 대신 돈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돌아가면서 반상회를 개최하지만, 한 번도 집을 공개하지 않는 주민들도 많다.

그래서 어느 아파트의 반장은 아래와 같은 꾀를 냈다. ‘17일 반상회에 도장을 가지고 꼭 참석해 주십시오. 반장과 운영위원 선출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반상회 개최 사실을 알리는 글이니까. 맨 끝에 ‘참석하지 않는 분 가운데서 선출하겠습니다. 반장’이라고 써 놓은 게 이 안내문의 핵심이다. 반장이나 운영위원 하기 싫으면 참석하라는 엄포인데, 정말 효과를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웃기는 것은 아래 안내문이다. ‘대치동 중 고등학교 중간 고사기간이 4월 19일부터 30일까지입니다. 내신성적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모두 최고의 긴장모드로 전환되는 시기입니다.’ 그건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래서 뭐 어쩌라구?

‘평소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세심한 주의심이 필요하다고 보겠습니다. 인테리어 공사 소음이 나는 일은 기일을 연기하고 못 하나 박는 것도 조심해 시험기간 중 정숙한 분위기가 유지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강남답다. 중간고사든 뭐든 시험기간에는 늘 이런 식인가 보다.

아이들 공부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이 생업이나 일상적인 행동까지 연기하고 보류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다른 곳에 사는 주민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니까 이건 우습고 재미있는 안내문이 아니라 씁쓸하고 티꺼운 안내문 되시겠다.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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