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나 탈세 혐의자들의 주요 축재 수단으로 고가의 미술품이 활용되고 있다. 부정부패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숨겨놓은 재산의 단골메뉴로 미술품이 등장한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수수색 과정에서 550여점의 미술품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해 5월 부실 저축은행의 퇴출조치 과정에서 드러난 재산중에도 값비싼 그림들이 포함됐었다. 김찬경 미래저축회장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피카소나 자코메티 등의 수백억대 작품을 담보로 450억을 대출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 한 제과 그룹의 회장은 회사 돈 수백억원으로 해외 미술품 등에 사용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가 소장하고 있던 그림중에는 세계적인 걸작품이 다수 있었다.
왜 미술품이 한국에서는 부정한 돈의 은닉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나. 우선 미술품은 부동산 등 다른 자산과 달리 투자 매력도가 높다. 비실명으로 은밀한 거래가 가능하고, 오래 보관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높아진다. 또 미술품의 경우 진위 감정이 어려워 공개적 거래가 쉽지 않다. 화가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특정 갤러리를 통해 가까운 지인끼리만 거래하는 속성이 있다.
미술품의 가격 결정은 복잡하고 주관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미술품 거래에 대한 과세도 쉽지 않다. 한 작가의 그림이라도 절정기의 것이, 초기 그림보다는 물감을 진하게 사용한 그림이 엷게 사용한 그림보다 비싸게 팔린다. 유명작가의 경우 작가마다 값이 다르다. 통상 호당 등급별 표준가격이 형성된다. 화가는 돈을 벌지 못하고 투자가가 돈을 버는 시장이 그림시장이다. 특히 사후 작가의 그림이 비싸게 팔린다.
문예진흥 차원에서 세계 모든 나라가 미술품에 대해서는 국경간 이동시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술품은 국내외 이동이 자유롭고, 이를 악용한 해외 자산 은닉도 용이하다.
미술품의 오명을 씻어주고, 거래 투명화와 시장 활성화를 통해 미술 진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미술품 가격결정체계의 구축 등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최근 한국미술품감정협회는 미술시장 가격체계 구축 및 가격지수 개발을 통한 한국미술시장의 가격체계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미술품에 대한 투명하고 공정한 가격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미술품 애호가나 투자자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미술시장을 제공함으로써 미술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미술품 가격체계가 확립되면 미술품은 자산이나 담보로서의 가치를 평가 받게 된다. 그러나 미술품의 실제거래 데이터가 부족한 미술시장의 특성상 모든 참여자들이 만족할 만한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부차원에서 실제 거래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기업인의 미술품 투자 자체는 문화 예술 진흥에 크게 기여하기 마련이다. 중세 메디치 가문의 문예부흥사업과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다빈치 등 수많은 예술가에 대한 후원이 세계적 걸작을 탄생시켰고, 1,400년이후 350년간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또한 수집한 미술품을 모아 이웃이나 미래 세대에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은 더욱 의미있는 일이라고 본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시대에 역사적 문화 예술품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소중한 작품들을 수집하였다. 그의 소장품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매년 일반에 공개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술 창작의 후원자들은 높은 안목과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투자자나 후원자들의 인문학적, 미적 수준이 올라가야만 미술시장도 선순환 할 수 있다. 이제 기업은 메세나 정신에 입각하여 사회적 배려와 문화예술 진흥차원에서 미술품에 투자하고, 개인들은 훗날 이웃이나 미래세대가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큰 투자가가 돼야 한다.
이병욱 동아시아지속 가능발전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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