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발견된 국보 제285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300여 점의 그림들은 수 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을 제법 유지하고 있다. 암각화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의 기록이다.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 우리 조상들은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바다가 인접한 스웨덴 타눔 암각화에는 배가, 몽골 알타이 암각화에는 사냥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었던 아이벡스가 주요 소재였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주요 소재는 고래이다. 고래는 전체 그림 약 25%를 차지하고 11종 65마리가 그려져 있다. 반구대만큼 고래가 많이 등장하는 암각화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왜 하필이면 고래였을까?
반구대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지 않다.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장생포와도 26km나 떨어져 있다. 고래가 반구대까지 온다고 해도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고래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사냥할 수 있었을까?
물론 고래사냥을 했을 것이라는 신석기시대 유물들은 발견되고 있다. 고래의 급소에 해당하는 견갑골(어깨뼈)에 사슴 뼈로 만들어진 작살 촉이 박힌 채로 발견되고, 경남 비봉리에서는 방사선 탄소 실험 결과 8,000년 전에 만들어진 통나무배가 발견되기도 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고래를 비롯한 해양 동물들을 사냥하고 숭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암각화들은 대부분 빛의 방향에 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한 삶의 기록 이상의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구상 가장 큰 동물인 고래를 사냥하고 외국과 교류했던 신석기시대에 한반도 문명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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