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애인 이동권을 주장하는 소송에서 장애인 쪽의 패소가 적지 않다. 각종 법률이 마련돼 있지만 사안별로 장애인 손을 들어주기에는 규정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돼 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근 장애인 5명이 시외 저상버스 도입을 주장하며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원고는 당국이 모든 교통수단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권과 이용권을 보장할 의무를 저버렸다며 위자료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재판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규정과 관련 "모든 교통 수단을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추라는 취지는 아니다"고 해석했고,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을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권리를 가진다'는 이동편의증진법 규정도 "모든 유형의 버스에 저상버스를 도입하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봤다.
시각장애인 4명이 청계천과 주변 시설에 자유롭게 접근하기 어렵다며 2008년 서울시와 서울시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손배소송을 냈다가 패소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 법원은 "장애인들이 편의시설의 설치 등을 요구할 권리는 구체적인 하위 법령의 규정에 의해 비로소 현실화하는 권리"라며 "헌법과 장애인복지법 등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1998년 장애인 대상 특별전형으로 숭실대에 입학한 박지주(42·여)씨는 2002년 장애인 편의 시설을 갖추지 않은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이겼다.
법원은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에 의지한 박씨를 위해 그리 많은 비용이나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이행할 수 있는 배려 의무를 학교 당국이 소홀히 했다며 박씨 손을 들어줬다.
원심 그대로 확정된 이 판결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다닐 권리를 다투는 사건의 시금석으로 남았으나 이후 10년이 넘도록 장애인 이동권을 온전히 지지하는 판결은 좀체 나오지 않고 있다.
한 판사는 "장애인 당사자의 사정은 안타깝지만 패소로 판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장애인 이동권을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구체적인 하위 법령을 마련하려는 입법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원영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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