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를 가진다.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게 좀 모호하다. 앞과 뒤의 '언론'이 더러 헷갈린다. 개인의 표현의 자유와 신문 등 언론의 자유를 명확히 구별하지 않은 탓이다.
참고로 독일 헌법은 "모든 사람은 자유로이 의견을 표현하고 전파하는 권리를 지닌다. 신문의 자유(Pressefreiheit)와 방송 보도의 자유는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결 또렷하다.
뜬금없이 왜 언론 자유, 신문의 자유인가. 진보 성향 신문과 언론학자, 문인 등이 한국일보를 걱정한다며 쓴 글에서 선의든 악의든 둘을 혼동하고 있어서다. 또 발행인과 기자들의 권리에 대해 그릇된 주장을 서로 베끼듯 되풀이하고 있다. 올바른 논의를 위해 이쯤에서 오류를 바로 잡으려 한다. 먼저 언론학자가 진보 신문에 쓴 글을 간추려 살펴보자.
"...언론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권력이나 경영진의 어떠한 간섭과 통제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미국에서는 취재와 편집에 어떠한 간섭과 통제도 없도록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사회 공적기구인 언론이 개인의 이익 창출에 사용돼서는 안된다."
언론이 경영진의 간섭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개인의 이익 창출에 사용돼서는 안된다는 말이 도무지 이상하다. 그러면 미국 언론 소유주들은 도대체 뭘 위해 애써 언론을 경영하고 책임과 위험을 부담하는지 묻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익을 위한 신문은 취재 편집 활동이 중심인 만큼 기자들의 언론 자유와 편집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흔히 주장한다. 권위주의 시절 권력으로부터 언론 자유를 지키려는 투쟁의 유산이 마치 도그마처럼 남아있다. DJ 정부 때는 경영과 편집이 분리된 '모범 신문'을 제도화하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주인 없는 신문'은 대개 좌파로 기우는 것이 서구와 우리의 경험이다.
신문의 역사가 오랜 서구 언론 선진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신문 제작· 발행을 통해 다양한 여론을 형성하도록 보장하는 신문의 자유가 언론 자유의 핵심이다. 발행인의 의견과 주장을 담은 신문으로 시장에서 경쟁, 사회적 영향력과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이 신문의 자유의 본질인 것이다.
따라서 사기업인 신문에서 기자들의 언론 자유는 발행인의 권리와 신문의 노선, 방침에 의해 제약된다. 자유주의적 언론과 헌법 전통을 따르는 영· 미에서는 편집권 논의가 아예 없다. 일본에서도 편집권을 발행인이 독점한다.
신문의 '내적 자유' 개념이 발달한 독일에서도 신문은 여론 형성을 이끄는 '경향(Tendenz) 기업'이라고 해서 발행인의 경향과 권한을 특별히 보호한다. 신문의 노선과 기본 방침, 주요 이슈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발행인이 갖는다. 편집인과 기자들은 일상적 기사와 편집에 관한 '세부적 권한'을 가질 뿐이다. 신문 내용을 만드는 것이 아닌 조판 인쇄 등은 여기서 제외된다.
독일은 노조의 경영 참여, 공동 결정권을 가장 진보적으로 수용한 사회다. 그러나 '경향 기업'의 노조가 신문 논조 등에 간여하는 것은 '외부 영향'이어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편집국 인사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신문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편집권과 인사 등을 둘러싼 갈등의 경위와 언론 자유, 신문의 자유를 편견과 왜곡 없이 살펴야 한다. 사기업과 다른 형태의 신문을 생각한다면 모를까, 문인· 작가도 아닌 언론학자들이 언론의 실제와도 동떨어진 주장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 신문법의 편집권과 편집규약 규정이 선언적 권고· 임의 규정일 뿐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례 등, 사실과 원칙과 법리를 엄격하게 따질 일이다. 물론 경영의 잘못도 그렇게 가려질 것이다. 굳이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문인이나 학자들과 달리 내가 신문에 몸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병태 주필 ㆍ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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