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시대적 배경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한 소년의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벼랑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에 신작 ‘바람이 분다’를 들고 돌아왔다. 그동안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등 다수의 작품에서 비행에 대한 동경을 담아낸 그는 이번 신작에서 하늘과 비행 장면을 가득 채워 넣었다.
'바람이 분다'는 실존인물인 일본의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1982)의 삶에 동시대를 살다간 작가 호리 타츠오(1904-1953)의 동명 소설 속 로맨스를 하나의 이야기로 버무린 작품이다.
1920년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194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한 '바람이 분다'는 비행 설계사를 꿈꾸는 호리코시 지로의 삶과 관동 대지진 당시 우연히 만났던 나호코와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조종사를 꿈꿨지만 심한 근시 때문에 조종사를 포기하고 비행설계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동경하던 이탈리아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 백작과 호리코시 지로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지로는 비행기 설계에 대한 순수한 열정, 그리고 나호코와의 절절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이 꿈꾸는 비행기를 설계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점에서 ‘바람이 분다’는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실제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전투기 제로센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카제 자살 공격에 일부 사용된 전투기였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전투기를 만든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전쟁 미화라는 오해의 소지를 다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바람이 분다’는 한 남자의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작품 속에서 호리코시 지로는 꿈속에서 만난 이탈리아 비행기 설계사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을 향해 “비행기는 전쟁 도구나 장사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꿈”이라고 강조한다. 카프로니 역시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받은 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역시 “지금까지 히노마루(일장기)를 이렇게 많이 그려본 작품이 없는데 영화에서 보면 히노마루가 붙은 비행기들이 다 추락하고 만다”고 전했다. 결국 ‘바람이 분다’는 한 사람의 순수한 열정이 잘못된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떠한 양상을 띠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바람이 분다’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호리코시 지로와 나호코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다. 우연히 만난 뒤 서로를 10년 동안 그리워하고 다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은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어른들의 사랑이야기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나호코의 모습은 어느새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애틋함이 서려있었다.
이번 작품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전작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몇몇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작품 속 등장하는 지진소리, 비행기 소리, 멀리서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 소리 등 대부분의 효과음을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더 정교하고 정밀한 소리를 낼 수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소리 전문가의 힘을 빌려 인간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특히 영화 속 관동대지진이 일어날 당시를 표현하는 사운드는 그 어떤 굉음보다 파괴력을 지니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에반게리온신 극장판’ 시리즈의 총감독으로 알려진 안노 히데야키가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전문적인 성우를 쓰지 않은 이유는 작품이 관객들에게 좀 더 친근하고 사실적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감독의 의도로 알려졌다.
제 7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정되는 쾌거를 이룬 ‘바람이 분다’는 지난 20일 일본에서 개봉, 6일 만에 150억 엔(약 1681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등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다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시대와 인물을 선택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이 과연 전작들처럼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