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민감 업종 부실 우려… 조선·건설·해운이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위험'
사실상 등 떠밀린 은행들… 상반기 순익 반토막 불구 쌍용건설 1조·STX 3조 등추가 지원 나서야 할 판
구조조정기금 내년 말 종료… '선박펀드'에 4666억 출자… 조선·해운업계 위기감 고조
정부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조선ㆍ건설ㆍ해운에 이어 경기에 민감한 철강ㆍ시멘트ㆍ석유화학업종 등이 추가 위험에 노출됐다는 판단 때문이다. 채권단이 주도하는 효율적 구조조정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채권은행들의 손실 확대에서 보듯 앞으로 정치논리는 철저히 배격하고, 시장 원리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최근 금융권이 떠안은 부실은 심각하다. 워크아웃 졸업 8년 만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건설이나, 채권단 반대에도 수조원이 투입된 STX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쌍용건설은 올해 2월 말 워크아웃을 신청해, 채권 금융기관들이 최종적으로 신규자금 4,450억원, 출자전환 1,070억원, 해외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 보증 2,400억원 지원 방안에 동의해야 됐다.
STX그룹 역시 전체 계열사 24개 중 STX조선, ㈜STX, STX엔진, STX중공업, 포스텍 등 5곳은 채권은행들과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강제협약'이라는 해석이 적지 않았다. STX가 무너지면 산업계와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적지 않다는 논리로 정부와 정치권이 압박하고, 채권은행들이 굴복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채권은행들은 올해 4월 STX조선해양에 6,000억원을 지원했고, 5월 ㈜STX에 3,000억원, STX엔진·STX중공업에 1,900억원을 각각 지원했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도 쌍용건설과 STX그룹에 각각 1조원과 3조원가량이 더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만 망가지고 있다. 올해 하나금융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5,566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3.6% 감소했다. STX 주요 계열사의 채권단 자율협약 신청으로 1,233억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쌓은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KB금융의 상반기 순이익도 5,75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0.3% 급감했다. 금융당국이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배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부실기업 처리 과정에서 수차례 금융당국에 등을 떠밀렸던 채권은행들은 당국이 원칙대로 기업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금융권에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 연장과 관련해 정부의 자의적인 입김을 막을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부실 기업 구조조정의 '시드머니' 역할을 해온 구조조정기금이 2014년 12월 31일로 종료되는 점도 정부가 기촉법을 연장해야 하는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 구조조정기금은 지난 2009년 2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늘어난 금융회사 부실채권과 구조조정기업 자산을 인수해 금융시장 불안을 해소하려는 목적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설치됐다. 그동안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채권 인수, 해운 및 건설업체 지원 등에 사용됐고, 특히 '선박펀드'에는 4,666억원 가량이 출자돼 선박 33척을 인수, 해운업계 안정에 기여해 왔다.
한진해운(17척), 현대상선(4척), 대한해운(4척), 흥아해운(3척), 동아탱커(3척), 장금마리타임(1척), 대보인터내셔널쉬핑(1척)이 이 펀드에 배를 넘겼다. 예정대로 기금이 종료되면 이들 해운사는 선박펀드에 넘겼던 배를 다시 사들여야 돼 가뜩이나 어려운 조선·해운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해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자산관리공사 측은 자체회계로 개인 부실자산 뿐 아니라 기업의 부실자산까지 인수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기금이 정리되더라도 기업 부실채권 인수·정리 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어 기촉법을 연장해 방어막을 쳐놓아야 한다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정승양기자 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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