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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와 세상/7월 26일] 장마는 격렬한 운우지정(雲雨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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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성의 날씨와 세상/7월 26일] 장마는 격렬한 운우지정(雲雨之情)

입력
2013.07.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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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에 큰 비가 오는 이유가 무언지 아십니까? 장마를 만드는 두 고기압의 사랑 때문입니다. 오호츠크고기압은 차고 습한 태음인의 기질을 가졌지요. 북태평양고기압은 덥고 습한 소양인의 체질이거든요. 그런데 태음인과 소양인은 찰떡궁합이랍니다. 이들이 만나면 난리가 나지요. 격렬한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인데요. 장마철에 강한 비와 천둥번개가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랍니다." 어느 한의학자의 말을 들으면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학자의 말 안에는 동양의 음양사상이 들어있다. 사상체질론이란 것도 음과 양의 이론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모든 현상을 음(陰)과 양(陽)의 대립과 순환 개념으로 해석했다. 날씨를 예로 들어보자. 증자(曾子)의 천원설(天圓說)을 보면, '음양의 기(氣)가 한쪽으로 쏠리면 바람(風)이 생기고, 음양 모두가 내재(內在)되어 있으면 우레(雷)가 생기고, 혼합되면 번개(電)가 생긴다. 기가 합쳐지면 비(雨)가 된다'고 되어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서도 '음양이 모여든 것이 구름(雲), 분노한 것이 바람 화합한 것이 비'라는 말이 나온다.

천원설이나 태평어람이나 공통점은 바로 비는 기가 합쳐지거나 화합한 것이라는 점이다. 비는 음과 양의 사랑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 한의학자의 말과 너무 비슷하다. 음양이 만나 사랑한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대가는 너무 크다. 무수한 사람이 죽고 다치고 산이 무너지고 침수로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 여름 장마는 이례적일만큼 독특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 올 장마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말을 만들어냈다. '거꾸로 장마'라는 용어가 있었다. 중부지방부터 장마가 시작 되었다 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반쪽장마'라는 말은 남부는 햇빛이 쨍쨍 비치는데 중부는 장마가 계속되기 때문인 듯 하다. '마른장마'는 장마 초반에 장마라는데 비가 오지 않았던 부실한 장마라는 뜻으로 생겼다. '야행성 장마'는 밤이면 유난히 비구름이 발달해 폭우를 쏟아 부어 만들어졌다. '도깨비 장마'나 '홍길동 장마'는 갑자기 장대비를 쏟아 붓고는 소리 없이 사라지는 비를 일컫는 말이다.

'스콜장마'도 이와 비슷한 뜻인 듯싶다. '토막구름장마'라는 용어도 나왔다. 구름이 이어지지 않고 토막토막 비를 내리다 보니 지역적 편차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마른장마를 넘어 '마른 더위', '맛뵈기 장마'란 말까지 생겼다. 이외에도 '복잡한 장마', '이상한 장마'와 더불어 '한 지붕 두 날씨', '두 얼굴 날씨'라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날씨는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특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적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는 국민들에게 장마의 특징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주기 위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낸다. 기발한 착상의 단어를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해!"를 연발하게 된다.

우리 조상들은 비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삼국사기를 보면 장마의 큰비를 뜻하는 말로 대우(大雨)와 대수(大水)가 나온다. 상당히 단순하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오면 표현은 다양해진다. 고려사에서는 장마를 뜻하는 용어로 임우(瀮雨), 며칠 계속되는 비를 항우(恒雨)나 상우(常雨)로 표현한다. 가늘지만 연일 이어지는 비는 음우(陰雨), 장대비가 쏟아지는 것을 취우(驟雨) 한꺼번에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을 폭우(暴雨)라 불렀다. 조선조의 세종대왕 시절에는 비를 여덟 단계로 구분했다. 보슬비라 부를 수 있는 미우(微雨)로부터, 세우(細雨), 소우(小雨), 하우(下雨), 새우, 취우(驟雨), 대우(大雨), 폭우(暴雨)에 이른다. 이러한 구분은 현재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비 관측 단계와 너무 비슷하다.

올 여름 장마 때 보였던 비는 형태에 따라 취우나 대우, 폭우에 해당할 것 같다. 새삼 조상들의 멋과 슬기에 감탄하게 된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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