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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외길 50년… 싼 약재 안 쓰는 '최 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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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 외길 50년… 싼 약재 안 쓰는 '최 고집'

입력
2013.07.2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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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동제약 창업주인 최수부 회장이 24일 강원 평창의 한 골프장 사우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78세.

경찰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20분쯤 이 골프장에서 먼저 목욕을 하고 나온 일행이 종업원을 시켜 찾아봤더니 최 회장이 사우나 내 열탕 속에서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21일부터 휴가 차 평창 지역의 한 리조트에 머물던 최 회장은 이날 오전 일행과 부부 동반으로 골프를 치던 도중 비가 와 클럽하우스로 되돌아왔다.

경찰은 최 회장이 평소 고혈압rhk 당뇨 등 지병이 있었다는 유족 등의 말을 토대로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1963년 10월 광동제약을 창업한 최 회장은 '한방 제약업계의 전설'로 불렸다. 싼 한약재를 사용하지 않는 '최씨 고집'으로 유명했던 고인은 50년 가까이 한방 제약기업 외길을 걸었다. 광동제약이 한해 매출 3,300억원의 탄탄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규슈 후쿠오카현에서 5남2녀중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해방 후 외가인 경북 달성으로 들어온 뒤 학교에 다녔으나, 가세가 기울어 정식 교육을 받은 건 초등학교 4학년까지가 전부였다. 13세때부터 나무장사, 과일장사 등을 하면서 집안을 책임졌으며 장사에 대한 안목도 키워 나갔다.

군 제대 후 고려인삼사업사에 '경옥고' 외판원으로 입사한 고인은 3년 연속으로 판매왕을 차지하며 창업 자금을 마련했고, 직접 경옥고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28세때인 63년 서울 용산에 차린 90㎡짜리 공장이 오늘날 광동제약의 모태다. 이후 광동제약은 거북표 우황청심원, 광동쌍화탕 등 다양한 인기 제품들을 탄생시키며 중견 제약회사로 자리잡았다.

고인은 약재를 직접 고르는 모습으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기도 했다. 10여년 전 TV광고에 직접 출연해 "우황을 고르는 일만큼은 30년째 내 손으로 해오고 있다"고 말하던 모습은 아직도 회자된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광동제약은 부도위기에 직면하는 등 시련도 있었지만 고인은 이를 거뜬히 극복했다.

2000년 이후 광동제약은 '비타 500', '옥수수수염차' 등 건강과 음료를 결합시킨 제품을 생산해 음료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최 회장은 제약산업과 기업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국민훈장 목련장(1996년)을 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일희(66)씨와 아들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 등 1남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정승양기자 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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