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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7월 22일]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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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7월 22일] 원칙과 변칙, 그리고 반칙

입력
2013.07.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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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서나 갈등은 항상 존재해 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갈등이 있고, 동서간의 갈등도 있다. 남성과 여성, 여당과 야당 사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갈등은 있다. 갈등은 서로의 생각과 원칙이 다른 것에서 생겨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상대방의 기준에는 틀린 것이 되고, 상대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원칙들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때,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이 나타나고 불협화음이 생기게 된다.

중국의 고전인 (列子) 탕문편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이야기가 있다. 북산에 살던 아흔 살의 우공이란 늙은이는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태행산과 왕옥산을 없애기 위해 산을 깎아내기로 결심하였다. 가족들을 설득하여 우공은 아들 손자와 함께 태행산의 흙을 퍼서 발해의 바다로 가져다 버리기로 하고 실행하였다. 이들의 행동을 본 이웃들이 비웃었지만 우공과 아들 손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행산의 흙을 발해로 퍼 날랐다. 이웃들은 그들의 힘만으로 태행산을 옮긴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손가락질 하였다. 또 파낸 흙을 발해까지 가져다 버리는 것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여 비웃었다. 그러나 우공은 대를 이어 이 일을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이런 우공과 가족들의 믿음으로 산이 없어질 가능성이 생기자, 태행산에 살던 산신은 당황하여 옥황상제께 산을 구해줄 것을 부탁하였고, 마침내 옥황상제는 태행산과 왕옥산을 먼 곳으로 옮겨 주었다.

이 이야기는 굳센 의지를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원칙과 관련된 우공의 또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원칙(原則)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고 정의된다. 우공은 태행산의 흙을 발해에 가져다 버리기로 하였다. 왕복에 일 년씩이나 걸리는 먼 길이지만, 가까운 곳에 흙을 버리는 것은 그곳에 또 다른 태행산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발해까지 가는 멀고 험한 길을 택하였다. 만일 우공이 태행산의 흙을 가까운 곳으로 옮기려 하였다면, 아마 산신도 느긋하게 이사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공의 원칙주의에 산신은 거처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마침내 옥황상제의 힘을 빌어 산을 옮김으로써 우공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원칙이 성공한 것이다.

원칙은 우리 사회를 움직이고 유지하는 힘이다.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 변칙(變則)이고, 원칙을 어긴 것이 반칙(反則)이다. 변칙은 편하고, 쉽다. 반칙은 큰 이득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변칙이 원칙을 이길 때 사회에서는 도덕이 사라지고, 기강이 무너진다. 반칙이 원칙을 이길 때 정의가 사라지고, 질서가 무너진다. 우공이 태행산의 흙더미를 가까운 곳으로 옮기려 하였다면, 그 자리에는 다른 산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변칙과 반칙에 기댄 옳지 않은 행동들이 우리 사회에 더 큰 혼란과 불편을 가져온 것을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보고 겪어왔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변칙과 반칙이 융통성(融通性)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원칙이 제대로 서야 융통성도 있는 것이다. 원칙과 동떨어진 융통성은 변명이자, 말하는 사람의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는 대지약우(大智若愚)라고 했다.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웃들로부터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받던 우공의 원칙이 산을 옮겼다. 원칙을 지키는 일은 우공이 산을 옮기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때때로 원칙을 지키는 일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원칙이 변칙과 반칙을 이길 때, 우리는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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