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이른바 '귀태' 발언 논란으로 촉발된 국회 파행을 의외로 신속하게 풀었다. 이는 여야 공히 '더 나갔다가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서로 한 발짝씩 물러나는 게 낫다고 인식한 것이다. 여야 원내지도부의 소통이 원활한 게 사태 조기 수습의 한 요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우선 새누리당 입장에선 집권 여당이 국회 파행을 장기화하기에는 부담이 컸다는 점이 작용했다. 민주당이 '귀태' 발언의 당사자인 홍익표 전 원내대변인의 당직 사퇴와 김한길 대표의 유감 표명까지 했는데 여당이 사태를 더 끌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민주당의 조치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 정상화를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14일 "집권여당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민주당의 사과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이 때문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열람과 국정원 국정조사까지 파행시킬 수는 없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민주당 역시 당사자의 당직 사퇴와 대표 유감 표명 등으로 발 빠르게 대처하고 나선 것은 강공으로만 가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특히 '귀태' 발언 논란이 자칫 대선 불복 논란으로 증폭될 경우 득이 될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때문에 이유를 불문하고 막말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만큼 일단 한발 물러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또 현실적으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할 경우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 측면도 있다. 민주당으로선 현재 대여 공세의 핵심 고리인 국정원 국조 불씨를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전병헌 원내대표가 이날 국정원 국조를 '옥동자'로 표현하며 "국정원 국조를 성과 있게 마무리해 유능하고 존재감이 분명한 민주당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에서도 이런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 최경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가 평소 자주 통화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등 소통이 원활했던 게 사태 해결에 한 몫 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대 81학번 동기인 '윤상현_정성호' 원내수석부대표 조합도 얘기가 잘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여야의 국회 정상화 합의에 대해 "이미 당으로 공이 넘어간 일인데 청와대가 입장을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논란이 일단락된 만큼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번 사태를 박근혜정부의 정통성 훼손 시도로 봤다는 점에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민주당이 국정원 국정조사 과정 등에서 또 다시 정통성을 문제 삼는 발언을 이어간다면 여권은 또 다시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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