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을 멍멍이에 비유해서 오해 없기를 바란다. 원래 셰퍼드의 사전적 의미는 양을 지키는 목자인 양치기를 말한다. 양떼를 보호하고 집을 지키는 대표적 번견(番犬)이 셰퍼드다. 셰퍼드는 용맹성과 충성심이 뛰어나 군견(軍犬)으로도 명성이 높다. 때문에 국가안보를 지키는 첨병, 체제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국정원을 셰퍼드로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국정원은 오뉴월 황구(黃狗) 신세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법을 어기고 선거법을 유린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대화록' 공개를 두고 범법집단으로 몰리고 있다. 야당은 국정원을 무차별 난타하고 있다. 그렇다고 청와대나 여당이 국정원을 역성드는 것 같지도 않다.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만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1961년 중앙정보부로 창설된 이후 국정원은 최고정보기관으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정치사찰과 고문, 도청과 미행 그리고 정치공작 등 지우기 쉽지 않은 어두운 기억이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남과 북이 대치한 엄혹한 현실 속에서 음지에서 일하며 나라의 안위를 지켜냈던 그 열정과 헌신을 결코 가벼이 치부해서 안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21세기 세계화ㆍ정보화 시대를 맞아 전 세계적으로 정보기관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9ㆍ11테러 이후 15개 정보기관을 조정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신설했다. IT의 발달로 국경의 의미는 무색해졌고, 복합적 위협이 상존한다. 때문에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도 국정원은 더욱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변해야 한다.
지금 정치권은 여러 가지 국정원 개혁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근본 방향은 국정원의 국내정치개입 여지를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옳은 이야기다. 국정원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라도 국내정치에 동원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각론적으로 들어가 보면 자칫 일시적 분위기에 들떠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우선 국내파트를 대폭 축소하거나 아예 해체하자는 주장이다. 국정원은 이미 2009년 10월 '지역별 차장제'에서 '직무중심 차장제'로 전환했다. 우리의 적이 해외를 통해 각종 IT기재를 활용하여 '국내의 민심'을 교란하는 것이 다반사다. 때문에 국내 요소요소에 암약해 있는 위협요인을 색출해야하는 국내 활동을 축소시키거나 없앤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 다음 정보수집과 수사권을 분리하여 국정원을 정보의 수집과 분석에 국한시키려는 흐름이다. 북한이 대남혁명노선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내부의 종북 세력들이 끊임없이 준동하고 있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데 북한의 직간접적인 침투와 종북세력의 준동을 막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인 수사기능을 없애자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비유로 돌아가 보자. 셰퍼드가 집도 잘 지켰고 도둑도 잘 막아냈다. 그런데 이따금 지키라는 양들을 괴롭혔고, 주인의 말에 맹종하여 양들을 물어뜯기도 했다. 언제 그 버릇이 다시 도질 줄 몰라 전전긍긍하다 묘책을 생각해냈다. 짖지 못하게 성대를 자르고, 물지 못하게 이빨을 뺀다. 양떼를 쳐다보지 못하게 눈을 멀게 한다. 그저 후각은 남겨두어 냄새만은 맡게 한다.
국정원을 약화시킬수록 아마 우리의 적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우리의 적은 북한과 종북세력뿐 아니다. 대한민국을 견제하면서 쥐락펴락하려는 모든 외부의 세력이 다 포함된다.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 개혁은 '개선'이어야지 '개악'이 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이다.
대통령이 국정원을 개인비서 부리듯 해서는 안 된다. 여야 정치권이 국정원을 정쟁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정권교체기마다 국정원 인사들을 줄 세우기 시켜서도 안 된다. 특정 정권의 국정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으로 거듭 나려면 대통령과 정치권 그리고 국정원 스스로의 노력이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하다.
황태순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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