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고립돼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 무대로 평가된다. 의장국인 브루나이가 2일 밤 폐막과 함께 채택한 ARF 의장성명에 북한의 주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진통 끝에 채택된 의장성명에는 "대부분의 장관들은 북한이 모든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의무와 9ㆍ19 공동성명의 공약을 완전히 준수할 것을 독려했다"며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북한은 박의춘 외무상 발언을 통해 "핵개발은 미국의 적대정책 때문"이라고 거듭 주장했지만 다른 회원국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이에 따라 27개국이 참여한 이번 ARF 회의는 북핵 문제에 있어서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26개국과 북한의 입장이 확연히 갈리는 '26대 1'의 구도가 됐다. 6자회담 참가국 외교장관들은 회의 기간 양자 또는 다자 형식의 연쇄 접촉을 갖고 6자회담 재개 조건 등을 조율했지만 북한과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특히 한국, 미국, 일본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며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성의 있는 사전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북한은 "9ㆍ19 공동성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반박했다. 때문에 이번 회의가 사실상의 비공식 6자회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총의를 확인한 것 외에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있다.
과거 ARF 회의에서 채택된 의장성명과 비교해도 아세안 지역에서 북한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우리 정부와 북한의 입장이 동시에 반영됐다. 금강산 피격 사건이 있었던 2008년 열린 ARF 회의에선 남북이 다른 입장을 내세우자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의장성명 최종본에서 빠졌다. 당시 '금강산 피격 사건의 조속한 해결' 문구를 넣으려 했던 우리 정부는 북한이 주장하는 '10ㆍ4 선언에 기초한 남북대화 지지' 문구가 채택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의 삭제를 요구했고, 이에 의장국인 싱가포르는 우리 정부와 북한 측 주장을 모두 삭제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2009년 의장성명에는 우리 정부의 주장('6자회담의 조기 재개, 9ㆍ19공동성명의 완전한 이행')과 북한의 주장('현재의 한반도 상황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 동시에 실렸다. 2011년 ARF 회의에서도 남과 북의 주장이 나란히 실렸다. 그러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지난해 회의에서 우리 정부의 입장만 담긴 데 이어 올해도 북한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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