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가안보국(NSA)이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의 주미 대사관을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영국 가디언과 독일 슈피겔 등 유력지들은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이 공개한 NSA 기밀문건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NSA는 독일에서 하루 2,500만 건의 전화와 인터넷, 휴대폰 문자메시지 기록을 수집하는 등 우방국을 상대로 광범한 스파이 활동을 했다. 앞서 스노든과 언론의 폭로로 미국과 영국의 방대한 민간인 대상 전자첩보감시망이 드러난 것과 함께 할리우드 첩보 영화가 실제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NSA 기밀문서에는 첩보 활동 대상 38개국 리스트가 나와 있다. 중동 등의 적성국 외에도 한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등 우방국이 들어있다. 슈피겔은 독일이 중국 사우디아라비아와 나란히 '3급 국가'로 분류됐으며,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급 우방'은 제외됐다고 전했다.
독일 프랑스 등은 충격과 분노를 쏟아냈다. 독일 언론은 '친구의 배신' 이라고 개탄했다. 두 나라 정부는 미국의 해명을 요구했다. 또 독일 검찰은 민간인 대상 정보 수집의 불법성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EU는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중단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NSA가 EU의 협상 정책과 전략을 염탐, 미국 정부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데 이용한 것으로 의심한 때문이다. NSA 문서에도 워싱턴 EU 대사관을 염탐한 목적이 EU 회원국의 정책 이견과 불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라고 적힌 모양이다.
이런 소란은 새삼스러운 것일 수 있다. 미국이 아니라도 정보기관의 스파이 활동은 적과 우방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로서는 국가정보원이 나라 안팎에서 첩보· 방첩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피고 경각심을 일깨울 일이다. 대선 개입 의혹에 휩싸인 국정원의 개혁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몇 년 전, 우방국 협상대표단의 서울 호텔 방에서 노트북을 통째로 들고 나오다 들통 난 우리 국정원의 어설픈 첩보 공작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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