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유럽연합(EU) 대표부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동맹국을 포함해 38개국의 워싱턴 주재 대사관을 상대로 도청 등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NSA는 독일에서 하루 수천만 건의 전화통화와 인터넷 사용 기록을 수집ㆍ저장하는 등 유럽 우방을 겨냥해서도 대규모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넷판은 지난달 30일 NSA가 38개국의 주미 대사관을 ‘표적’(target)으로 삼아 도청과 사이버 공격 등을 통해 정보수집을 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중앙정보국(CIA) 전직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30)이 건넨 NSA의 2007년 기밀문건을 인용해 이 같은 스파이 활동 대상 38개국 리스트에는 ‘적대국’으로 간주하는 나라나 중동지역 국가 외에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EU 회원국과 한국, 일본, 멕시코, 인도, 터키 등 우방이 대거 포함됐다고 전했다. 다만 영국과 독일 등 다른 서유럽 국가는 2010년 9월 작성한 기밀문건의 리스트에선 빠졌다고 가디언은 소개했다.
가디언이 입수한 또 다른 문건에는 미국 스파이 활동의 목적과 방법을 일부 엿볼 수 있는 언급이 들어 있었다. NSA의 2007년도 문건은 NSA가 워싱턴에 있는 EU 대표부를 겨냥한 염탐을 통해 대상국의 내부 정보와 정책상 이견 등을 포착한다는 목적을 적시했다.
감시 대상국별 작전 암호명도 문건에 언급돼 있다. 유엔 주재 EU대표부를 대상으로 한 작전은 '페르피도'(Perpido)라고 불렀고 유엔과 워싱턴 주재 프랑스대사관을 상대로는 각각 '블랙풋'(Blackfoot)과 '워배시'(Wabash) 등의 암호명을 붙였다.
한편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후속 기사를 통해 NSA가 EU 국가를 상대로 전화통화와 인터넷 이용 기록을 대규모로 수집했으며, 특히 독일이 주요 표적이 됐다고 전했다. 슈피겔이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NSA는 독일에서 매달 5억 건에 이르는 통신정보를 수집해 저장했다. NSA의 이런 활동 대상에서 제외된 국가는 호주와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뿐이었다고 슈피겔은 덧붙였다.
이에 따라 EU와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은 앞다퉈 해명을 요구하면서 "사실로 확인되면 상상할 수도 없는 충격"이라고 비난하고 있어 미국과 관련국 간의 관계가 악화되는 등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 정부는 외교채널과 양측 정보전문가들 간 대화를 통해 이번 문제를 EU측에 적절하게 설명할 것”이라며 “다만 미국은 다른 모든 나라가 수집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외국 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확실히 밝혀 왔다”고 해명했다. 한편 한국 외교부는 “사실관계가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공식적으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런던ㆍ워싱턴ㆍ베를린=외신종합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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