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스포츠 선수에게 등번호는 자신을 상징하는 숫자다. 정든 유니폼을 벗을 때 남는 것은 이름과 등번호다. 구단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속팀 선수들의 등번호를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 프로야구에서 61번은 박찬호(한화 은퇴), 36번은 이승엽(삼성), 7번은 이종범(KIA 은퇴)이 각각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우상 따라 등번호도 함께
NC 모창민(28)은 등번호 16번을 달고 있다. 이유는 자신의 롤모델인 LG 정성훈(33)을 따라가기 위해서다. 모창민은 "포지션이 3루수로 같고, 고등학교 선배로서 닮고 싶어 선택했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모창민의 광주일고 2년 후배 넥센 강정호(26)도 같은 등번호다.
지난해 트레이드로 두산에서 넥센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이성열(29)은 36번을 선호한다. 최고의 왼손 타자 이승엽이 36번인데다 영문 이름 이니셜(LSY)도 같아 애착이 강하다. 줄곧 36번을 달다 넥센에 새 둥지를 틀 때 10번을 받은 이성열은 36번을 달고 있던 투수 문성현에게 부탁했고, 후배의 통 큰 양보로 자신이 원하던 번호를 얻었다. NC 영건 사이드암 이태양(20)은 자신의 우상을 따라 넥센 김병현과 같은 등번호인 49번을 달았다.
부진 탈출 위한 등번호 교체
선수들은 부진할 때 분위기 반전을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 중 하나가 등번호 교체다.
SK 박재상(31)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공격ㆍ수비ㆍ주루 3박자를 갖춰 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2010년 들어 부상이 찾아오며 조금씩 내리막길을 걷다 지난해 100경기 출전해 타율 2할1푼6리 4홈런 23타점 6도루에 그쳤다. 반전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존 등번호 1번에서 11번으로 바꿨다. 그러나 등 번호 교체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 박재상은 "괜히 바꿨나 보다"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롯데 김승회(32)는 기존 20번에서 32번으로 교체했다. 원래 롯데 32번은 황진수가 달았다. 김승회는 황진수가 1군에 올라왔을 때 황진수에게 "선배가 야구를 잘 하고 싶어 32번을 달고 싶다"고 부탁했다. 이에 황진수는 흔쾌히 내줬다. 김승회는 32번에 애착이 강했지만 두산 시절엔 선배 김선우가 달고 있었다.
우연히 남은 번호 택했을 뿐
SK 한동민(24)은 올 시즌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아무 생각 없이 62번을 골랐다. 경쟁자가 없을 것 같아 선택했는데 62번을 달았던 선배 박재홍의 은퇴식 때 '리틀 쿠바' 후계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동민은 "앞으로 박재홍 선배의 몫까지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했다.
NC 손민한(38)은 1997년 롯데 입단 때 계약이 늦어져 남은 70번대 번호 가운데 71번을 달았다. 그러나 코치들의 등번호가 대부분 70번대라 10개 낮춰 61번을 달았다. 올해 연습생으로 NC에 입단할 때는 61번을 달고 있던 후배 윤형배가 "전성기 구위를 찾길 바란다"며 선뜻 번호를 건네줬다.
메이저리거 류현진(26ㆍLA 다저스)은 한화 입단 첫 해인 2006년 15번을 달려고 했지만 2005년 뉴욕 메츠에서 활약했던 15번 주인 구대성의 복귀로 그냥 남는 번호 중 99번을 골랐다. 넥센 유한준(32)은 자신의 딸 생일 6월1일을 기념하기 위해 61번을 달고 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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