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공부를 하라고 권유하는 전단지를 받고 보니 11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영어 공부를 해서 해외 연수를 다녀오기로 결심하고 토익학원에 등록했었다.
가보니 예상대로 수강생은 모두 내 아들딸 뻘이었다. 머리도 허연 사람이 남 가르쳐도 시원찮을 판에 영어공부를 한답시고 매일 학원에 가긴 갔지만 어찌나 거시기하던지.
우리를 가르치는 강사는 서른을 갓 넘은 청년이었는데, 영어 실력이 대단했던 것 같다. 목소리도 그럴 듯하고 교습법도 잘 훈련돼 있어 그런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는 자기도 간간이 토익 시험을 치른다며 수강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하곤 했는데, 점수를 이야기하지 않는 걸 보면 만점은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어쨌든 몇 달 강의를 듣고 토익시험에 응시했다. 그런데 고사장인 어느 고교(어디였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에 갔다가 또 한 번 당황스럽고 멋쩍어졌다. 교실마다 응시자의 명단을 게시해 놓았는데, 주민등록번호까지 함께 써 놓은 것이었다. 그 방에서 내가 최고령자였다. ‘아아니, 왜 이런 걸 써 붙여놓고 랄지(지랄)야?’가 그때의 내 솔직한 기분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항의를 받아서인지 요즘은 그러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받아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점수가 좋았다. 내 점수를 듣고 ‘어쭈?’하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역시 객관식 시험은 눈치가 좋아야 돼. 오래 살다 보면 뭐든지 더 알게 되고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기 마련이지. 어흠!’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달 뒤엔가 한 번 더 시험을 치렀을 때는 점수가 처음보다 오히려 더 낮았다. 그때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뭐든지 겁 없이 처음 해볼 때 잘되는 거야. 고스톱 처음 치는 사람이 돈을 따지 않던가?’
아까 말한 토익강사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강사는 쉬는 시간에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울 때 나이 많은 내가 안쓰러웠던지 좋은 말을 해주려고 애를 썼다. 특히 “토익점수가 좋으려면 여러 가지 글을 많이 읽어야 된다, 신문에 실리는 사설을 열심히 읽어라.”고 여러 번 이야기해주었다.
나는 그때 논설위원으로서 신문에 실리는 사설을 매일 읽는 정도가 아니라 지겹도록 매일 쓰고 있었다. 속으로 우스웠지만 “아, 네. 그렇지요. 맞아요.”하고 맞장구를 쳐주면서, 읽어보니 어떤 사설이 괜찮더냐고 묻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인상적인 것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돈 많고 집안 좋고 잘생기고 공부 잘하고 외제 자동차 타고 다니고 마누라까지 이쁘고 영어도 잘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왜 그럴까요?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러더니 그는 이어 “그런 놈들은 다 쥑여야 돼요.” 이랬다
적개심과 증오를 담아서 저주하는 말이 아니라 부러움과 찬탄과 질시가 뒤섞인 농담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단박에 그가 좋아지고 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아하니 어려운 집안에서 어렵게 근근이 살면서 공부해온 청년인 것 같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엄친아’와 같은 사람을 따라잡거나 추월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그에게 인생을 바꾸는 수단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요즘도 짓궂은 표정을 지어가며 그의 말을 잘 써먹는다. 실제로 그런 마음이 들 만큼 부러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잊었고,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영어든 무엇으로든 일가견을 이루기 바란다. 많아봤자 지금 40대 중반, 한참 좋은 나이 아닌가. 나이가 든 사람들은 자기보다 나이가 적으면 무조건 다 한참 좋은 나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임철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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